이런저런 잡설

한글창제 당시에 신하들은 한글을 천대했다?

수水 2009. 10. 9. 20:42

세종께서 언문청(諺文廳)을 설치하여 신숙주, 성삼문(成三問) 등에게 명하여 한글을 짓게 하니, 처음에 초종성(初終聲)이 8자(八字), 초성이 8자, 중성이 12자였다. 그 글씨체는 범자(梵字)를 본받아 만들어졌으며, 우리 나라와 다른 나라의 어문 문자(語文文字)로써 표기치 못하는 것도 모두 막힘없이 기록할 수 있었다. 《홍무정운(洪武正韻)》의 모든 글자를 또한 모두 한글로 쓰고 드디어 오음(五音)으로 나누어 분별하니, 이를 아음(牙音)ㆍ설음(舌音)ㆍ순음(脣音)ㆍ치음(齒音)ㆍ후음(喉音)이라 하는데, 순음에는 경중(輕重)의 다름이 있고 설음에는 정반(正反)의 구별이 있고, 글자에도 또한 전청(全淸)ㆍ차청(次淸)ㆍ전탁(全濁)ㆍ불청(不淸). 불탁(不濁)의 차이가 있어서 비록 무지한 부인이라도 똑똑하게 깨닫지 못함이 없게 하시었으니, 성인(聖人)이 물건을 창조하시는 슬기로움이야말로 범인의 힘으로 미칠 바가 아니다.

용재총화(성현) : 성인이 물건을 창조 드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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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慈宮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를 말함)께서는 평소에 한가하고 편안하신 적이 없었으니, 여러 성조들의 어제(御製) 수십 권을 언문으로 번역하고 손으로 베끼셨는데, 자획의 세밀함이 역서(曆書)의 작은 글씨와 거의 같으니 자궁의 건강이 날로 건승하심을 또한 우러러 알 수 있겠다.

홍재전서(정조) : 우리엄마는 역대 제왕들이 써놓은글 한글로 번역해뜸. 글이 명필인거 보니 우리 엄마는 건강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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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각 나라가 각기 문자(文字)를 만들어 그 나라의 방언(方言)을 기록하는데 우리나라에만 없다고 여기고, 마침내 자음(子音)과 모음(母音) 28자를 만들어 ‘언문(諺文)’이라 이름하고 금중(禁中)에 국(局)을 열어 정인지(鄭麟趾), 신숙주(申叔舟), 성삼문(成三問), 최항(崔恒) 등에게 명하여 찬정(撰定)하도록 하였다. 대개 고전(古篆)을 본떠서 초성(初聲), 중성(中聲), 종성(終聲)으로 나누었다. 글자가 간단하고 쉬운데도 이리저리 쓰는 것이 무궁하여 모든 말과 소리 가운데 문자로 기록하지 못하던 것이 모두 통하여 막힘이 없었다.

임화필기(이유원) : 한글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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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신라(新羅) 때에 설총(薛聰)이 처음으로 이두(吏讀)를 만들어서 관가나 민간에서 이제까지 써왔으나 모두 글자를 빌려 만들었기 때문에 더러는 난삽하기도 하고 통하지 않기도 하였으니, 비루하고 근거가 없을 뿐만이 아니었다. 임금이 생각하기를, “모든 나라가 각기 자기 나라의 글자를 만들어서 자기 나라의 말을 기록하는데, 유독 우리나라에만 그것이 없다.” 하여 친히 자모(字母) 28자를 창제하여 ‘언문(諺文)’이라 이름하였으며, 궁중에 언문청을 설치하고, 신숙주(申叔舟)ㆍ성삼문(成三問)ㆍ최항(崔恒) 등에게 명하여 편찬시켜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이름하였다.

초종성(初終聲)이 여덟 글자이니, ㄱ ㄴ ㄷ ㄹ ㅁ ㅂ ㅅ ᅌ이요, 초성(初聲)이 아홉 글자이니, ㅈ ㅊ ㅌ ㅋ ㅍ ㅎ  ᅀ ㅇ이요, 중성(中聲)이 열한 자이니,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ㆍ이었다. 그 글자 체는 옛전자[古篆]와 범자(梵字 인도자)를 모방하여 만들었다.그리하여 모든 말소리나 한문자로서 기록할 수 없는 것을 막힘없이 통달하게 하였고, 《홍무정운(洪武正韻)》에 실린 모든 글자 역시 모두 언문으로 쓰게 되었다. 드디어 오음(五音)으로 나누어 구별을 지었으니, 곧 아음(牙音)ㆍ설음(舌音)ㆍ순음(脣音)ㆍ치음(齒音)ㆍ후음(喉音)이었다.순음에는 가볍고 무거운 것의 다름이 있고, 설음에는 정(正)과 반(反)의 구별이 있으며, 글자 중에서도 역시 전청(全淸)ㆍ차청(次淸)ㆍ전탁(全濁)ㆍ차탁(次濁)ㆍ불청(不淸)ㆍ불탁(不濁) 등의 차이가 있어, 비록 무식한 여인이라도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이가 없었다.

연려실기술(이긍익) : 한글 조낸 쉬ㅋ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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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언문 글자는 세종 28년인 즉 병인년에 처음 지었는데, 온갖 소리를 글자로 형용하지 못할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이를, “창힐(倉頡)태사(太史) 주(籒)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라.” 하였다.

성호사설(이익) : 우리 세종킹왕짱님하는 한자 처음 만든 쇼키들이랑 친구 먹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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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正音) 28자를 창제하여 대략적으로 예의(例義)를 게재하여 제시하였다. 그리하여 그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하였다. 형태를 본떠서 글자를 만들되 고전(古篆)을 모방하였으며, 소리를 인하여 7가지 음을 맞추었다. 삼극(三極)의 의의와 이기(二氣)의 오묘함을 모두 포괄하므로 28자만으로 전환이 무궁무진하였다. 간단하면서도 긴요하고 정밀하면서도 막히는 데가 없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하루아침에 터득할 수 있고 어리석은 자일지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는 글이었다. 이 글자를 가지고 옛 글을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가 있고 이 글자를 가지고 송사를 심리하면 그 실정을 캐낼 수가 있다. 자운(字韻)의 경우에도 청탁(淸濁)을 구분할 수가 있고 악가(樂歌)의 경우에도 음률을 맞출 수가 있다. 따라서 쓰고 싶은 말을 표현하지 못할 것이 없고 어디를 가든지 통하지 못할 것이 없다. 비록 바람 소리, 학의 울음 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일지라도 모두 글로 적을 수가 있다. 드디어 신들에게 명하여 자세하게 해석을 가해서 사람들에게 깨우쳐 주도록 하였으니, 거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을 모시지 않고도 스스로 깨닫게 하였다. 그러나 그 글의 연원과 오묘한 뜻에 대하여서는 신들이 언급할 일이 아니다.

국조보감(신숙주) : 한글 칭찬의 극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