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설

나랏말싸미..."어제 훈민정음"(펌)

수水 2019. 7. 26. 15:07

훈민정음 언해에 보면 분명하게 '어제 훈민정음'이라고 나옵니다.
'어제'라는 단어에 대해 '임금이 지으신'이라고 훈민정음 언해본에 당대의 표기법으로 나옵니다. 

어제라는 단어는 반드시 왕이 직접 했을 경우에만 사용하는 말입니다. 
즉 왕이 직접 그 글을 지었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 이 표현을 쓰면 모가지가 날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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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임금이 명하고 신하들이 만들었다면 '임금의 명에 의해 신하 누구누구가 만들었다, 혹은 편찬했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든 과정을 역사적인 고사에 의해 쭈욱 적어내려 갑니다. 
예를 들면 악학궤범이나 동국정운 서문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보기만 해도 골치가 아픕니다. 

http://contents.history.go.kr/front/hm/view.do?treeId=010504&tabId=01&levelId=hm_095_0020  악학궤범 서문
https://ggagddugi.tistory.com/21  동국정운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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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명령에 의해 책을 만들었는데 서문은 임금이 직접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는 '어제 ~~~ 서'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무예 도보통지는 정조의 명에 의해 신하들이 책을 만듭니다.  
허나 서문은 정조가 직접 썼습니다.

그래서 그 서문이 '어제무예도보통지서'라고 합니다. 
즉 '임금이 직접 지은' 무예도보통지의 서문이라는 뜻입니다. 
서문만 임금이 직접 썼다는 의미입니다. 


공자에 의해 정립된 춘추필법 - 사실만을 그대로 적는다는 저술법 -에 의해 모든 동양의 저술들은 위의 방법을 따릅니다.
만약 위의 방법을 따르지 않았다? 그게 바로 사문난적이고 공자의 뜻을 어긴 것이 됩니다.
그러면 모가지가 날라갑니다. 왕도 이 춘추필법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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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의 서문을 보면 참 희한한 것이 있습니다. 
세종때 지은 책들의 서문을 보면 다들 굉장히 내용이 깁니다. 
그리고 각종 고사들을 인용해 가면서 왜 그런 책을 지었는지 쭈욱 설명합니다.
당장 위의 무예도보통지만 해도 정조가 직접 썼는데도 훈민정음 서문보다 깁니다.
악학궤범이나 동국정운은 더 깁니다.

동양에서는 책을 편찬한다는 것이 굉장한 일이기에 그것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래서 상당히 서문이 깁니다. 그것을 통해 자신의 유식함도 자랑해야 하니까요. 
왕이 직접 서문을 써도 긴 것이 평균입니다. 


헌데 훈민정음은 서문이 굉장히 간단합니다.
왕이 직접, 그것도 세종대왕같은 공부의 끝판왕이 쓴 서문인데 정말 간단합니다. 
(물론 정 인지가 쓴 서문이 있는데 그것은 또 상당히 깁니다.) 

그리고 각종 고사들을 인용한 것이 없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상당히 놀라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아무런 학식이 없어도 그냥 한자 몇자만 알면 그냥 서문의 뜻을 알수 있습니다.)

편찬과정이나 신하의 이름도 전혀 없습니다. 
신하에게 명령을 해서 만들었다는 그런 표현도 없습니다. 


책 제목도 파격적입니다. 
세종이 살아있을 때에는 어제훈민정음이라고 굳이 왕이 직접 만들었다고 하고.
죽은 뒤에는 세종어제 훈민정음이라고 해서 굳이 세종이 직접 만들었다고 하고. 
살아있을 때 직접 자기가 지었다고 하고 죽어서는 후손들이 직접 왕이 만들었다고 하고.

왕의 이름을 가지고 절대 이런 장난은 못 칩니다. 
모가지가 열개라도 부족합니다. 


그리고 서문에 予 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라고 하는데 굳이 予(본인)이라는 표현을 써 가면서까지
직접 지었다고 강조를 하고. 
짐[朕]과 과인[寡人]이라는 표현도 있는데 왜 굳이 여(予)라는 표현을 사용했는지...
여(予)라는 단어는 개인,나,혼자라는 뜻이 강한 단어입니다. 왕이 왜 이런 표현을 사용했는지...
아마 신하들의 도움없이 스스로 모든 것을 했다는데서 오는 자부심이 아닐지 추측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서문에 있는 바로 이 단어 여(予)라는 표현때문에라도 세종대왕이 직접 만들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물론 세종께서 모든 것을 다 조사하지는 못 했습니다. 왕이 직접 어디갈 수는 없으니까 
신하들을 시켜서 자료등을 수집하는 것은 했을 것입니다. 허나 그 작업의 처음과 끝은 세종대왕이 직접
하셨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