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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비명, 냄새.
하켈은 능숙했다. 하얗게 달궈진 송곳을 배, 허벅지, 팔뚝, 발목, 발뒷꿈치에 계속 박아 넣고 있었다. 촌로들 두명이 밖으로 달아났다. 곧 구역질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행이었다. 살타는 냄새는 익숙했지만 구토물의 시큼한 냄새는 내가 무척 싫어하는 것이었다. 만찬 전에 식욕을 잃는 것 만큼 불쾌한 일도 없다.
하켈이 다시 송곳 하나를 여인의 오른쪽 젖가슴으로 찔러 넣었다.
“사제님?”
하켈이 약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미 고문이 조금씩 지겨워지고 있는 참이었다.
“뭔가?”
“상처가… 없습니다.”
“뭐?”
“가슴에.. 보십시오.”
하켈이 화로에서 송곳 하나를 다시 빼들고 이번에는 약간 천천히 송곳을 여인의 오른쪽 젖가슴 같은 위치에 꽂았다. 연기가 약간 피어오르고 살갗이 열리며 송곳이 여인의 몸을 파고 들었다. 여인은 비명지를 힘도 없는 듯 아예 소리도 내지 않았다.
“뭐가 문제인가?”
“보십시오.”
하켈이 약간 송곳을 돌리며 잡아 뺐다. 여인의 젖가슴엔 송곳 크기의 구멍이 잠시 생겼다가 금방 아물어 버렸다. 나는 약간 놀랐다. 정말 마녀를 찾아낸 것이다.
“악마의 표식을 찾았구나.”
내 목소리에 약간의 떨림이 섞인 것을 하켈도 눈치챈 것 같았다. 내가 멈추라는 명령을 하지 않았는데도 하켈은 송곳 꽂기를 멈추고 있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매달아라.”
하켈이 마을 젊은이 두명의 도움을 받아 여인을 대들보에 밧줄로 매달았다. 꽁꽁 묶인 여인의 손목의 껍질이 천천히 벗겨지는 것을 보면서 난 생각을 가다듬었다.
사탄과 마녀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난 믿었다.
많은 증거도 찾았다. 염소뿔을 한 사탄의 조각. 마녀들이 쓰는 연고. 절굿통이 짓이겨진 갓난 아이들의 시체. 사탄의 십자가. 셀 수 없는 흑마술의 흔적들을 난 직접 목격했다.
자신이 마녀라고 자백하는 이들도 많았다. 물론 대부분은 하켈의 몽둥이 끝에서 나온 자백이었지만, 개중에는 정말 진지하게 자신이 악마와 잠자리를 했노라고 주장하는 여인들이 있었다. 몇몇은 고문과 감금, 배고픔에 머리가 살짝 돌아버린 것이었겠지만, 드물게도 그 중 몇몇은 눈빛에 총기가 살아있는체로 자신이 마녀라고 자백했다. 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마녀라고 믿었다. 그리고 자랑스러워 했다.
그러나 자신을 마녀라고 믿는 여인들과 진짜 마녀는 달랐다. 나는 오늘 진짜 마녀를 발견한 것이다. 상처나지 않는 여인의 젖가슴은 확실한 증거였다. 스승님과 하인리히 인스티토리스여 자랑스러워 하소서. 나도 모르게 나는 왼손으로 ‘마녀들의 망치’를 쓰다듬고 있었다.
‘자, 이제 어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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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자리를 정리해야 했다. 이제 단순한 마녀재판이 아니었다. 만찬의 거위요리와 베니스에서 기다리는 내 애인을 흥분시킬 향신료도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같이 마녀로 지목된 두 남자와 한 여인이 남아 있었다. 사색이 되어 떨고 있었다. 스무살이 갓 넘은 듯한 뚱뚱한 젊은 여인은 이미 바닥에 오줌까지 지린 듯했다. 저들도 진짜 마녀일까?
가장 쉬운 방법은 물어 보는 것이다.
“너희들, 두려운가?”
뭔가 인간의 목소리라기 보단 겁에 질린 생쥐가 꺼걱 대는 듯한 소리가 그들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가장 위대한 마녀재판관 하인리히 인스티토리스 께선, 재판을 받을 때 두려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마녀의 확실한 증거라고 하셨다.”
위대한 인스티토리스. 두려운 모습을 보이면 마녀다. 두려워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마녀다.
“너희가 하나님의 자식들이라면 나의 공정한 재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너희는 악마와 계약을 맺었는가?”
머뭇거림. 마녀가 아니라는 대답에 그들이 어떤 꼴을 당할지, 그 대답이 두 남자와 한 여자의 눈 앞에서 천장에 대롱 대롱 매달려 있었다. 벌거벗은 중년여인, 온 몸은 깨어지고, 부러지고, 잘리워지고, 태워지고, 으깨졌다. 피가 흥건한 여인의 발 밑에 손가락 세 개가 나뒹굴고 있었다. 석벽 어두운 한 구석에 커다란 쥐 한마리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오늘 밤 저 쥐는 포식할 것이다.
“자백하라. 마녀임을 자백하면 고문없이 죽여주겠다. 너희 가족들도 살아날 것이며 재산도 그대로 보존될 것이다. ”
그들의 눈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물론 너희들의 화형식에 쓰일 장작값은 가족들이 물어야 한다.”
아직도 그들은 머뭇거렸다. 난 한숨을 쉬었다.
“하켈, 저 남자의 매달고 갈고리로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라.”
남자는 비명을 질렀다. 몸부림을 쳤지만 하켈이 쇠몽둥이로 이빨을 여남은개나 부러뜨리자 이내 조용해졌다. 남자가 매달렸다. 하켈이 날이 얇고 넙적한 칼을 꺼냈다. 뼈와 부딪히면 이내 부러질 만큼 얇은 칼이지만, 하켈은 결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하켈은 숫돌을 꺼내 대여섯번 날을 세웠다.
손을 들어 하켈을 잠깐 세웠다.
“마지막 기회다. 자백하라. 자백하면 내일 아침 화형식 직전에 독한 브랜디와 양귀비 즙을 먹여 주겠다. 꿈꾸듯 편안히 죽을 것이다.”
남자가 몸을 떨며 부러진 이빨 틈 사이로 흐느꼈다.
“악마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하켈이 재빨리 잉크와 펜으로 세명 모두의 서명을 진술서에 받았다. 이름을 쓸 줄 아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누런 진술서에 X 자 셋이 새겨졌다.
“저들을 감금하라. 약속대로 내일 아침 화형식 전에는 특별히 브랜디와 약물을 먹여주라. 교회는 악마의 자식들에게조차 자비로움을 보여주라.”
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제는 나와 저 마녀 둘 만 남았다.
“모두 이 방을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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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녀가 끌려나갔다. 그들 중에 다른 진짜 마녀가 섞여 있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지금 매달려 있는 이 여인에겐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나는 안다.
나의 위대하신 스승님 조차 진짜 마녀를 잡아 본 적은 없었다. 내가 갓 머리를 민 수련 수도사였던 시절, 난 스승께 여쭤 본 적이 있었다.
“스승님, 저들이 마녀인 것이 틀림 없습니까?”
“나의 영국인 견습생이여, 그 질문이 나올 것이라 짐작했느니라.”
“혼란스럽습니다. 스승님”
아아, 나는 얼마나 애송이였던가. 스승은 대답했다.
“마녀가 없다면 세상이 얼마나 혼돈스럽겠느냐?”
그 대답의 의미를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누구나 마녀를 필요로 했다. 농사를 망친 농부도, 바람피우는 남편을 가진 아낙네도, 농노들의 반란이 일어나기 직전의 귀족도 마녀가 필요했다. 그리고 우리는 필요한 만큼의 마녀를 그들에게 주었다. 세상의 혼돈을 막는 최일선의 전사, 그것이 마녀 재판관이었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마녀가 혼돈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혼돈이 마녀를 불렀다. 우리는 마녀를 불태워서 혼돈을 잠재웠다.
그러나 저 마녀는 다르다.
나는 겁이 났다.
하켈도 내보낼 작정이었지만 마음을 바꿨다.
“하켈은 남으라.”
촌로들이 서둘러 심문장을 떠났다. 오래된 포도주 저장고는 조용해졌다. 화로에서 하얗게 달궈진 숯이 종종 탁탁 소리를 내며 튀었다.
송곳 하나를 내가 직접 꺼내 들었다. 수련 시절 이후 직접 고문 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재판관의 권위를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스승님이 금지하신 일이었다. 그래서 종종 나는 수련 시절을 그리워했다.
다시 송곳을 여자의 가슴에 꽂았다 뽑았다. 여전히 상처는 남지 않았다.
“이름이 무엇인가?”
히히, 여자가 웃었다. 솜털이 곤두섰다.
“무엄하다 마녀!”
하켈이 소리질렀다. 마녀의 눈이 크게 치떠졌다. 인간의 것이 아닌, 쇠로 된 멧돌을 긇어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녀의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다. 소리는 마치 마녀의 뱃속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아니면 내 발 밑 지옥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몰랐다.
“재판관, 너를 만나고 싶었다.”
다리가 흔들렸다. 그러나 사제복을 입은 나를 악마의 힘은 건드리지 못하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마르가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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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가리타. 너는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 맞느냐.”
여인의 눈이 반짝 거렸다. 무엇일까?증오? 고통? 분노? 화로 안의 숯불 보다 더 뜨거운 것이 여인의 눈 속에 있었다.
“새벽의 주인이 오신다, 영국에서 온 사제여.”
여인은 흐흐흑 웃었다. 아니, 웃는다고 생각했다. 여인은 입속으로 무언가를 읊고 있었다. 위험이 다가오고 있었다.
“입을 막아라, 하켈”
하켈이 쇠망치를 집어 들었다. 여인이 하켈을 쏘아 보았다.
쇠망치가 하켈의 손에서 날라갔다. 똑바로 내 미간을 향해 날아드는 쇠망치가 간발의 차이로 빗나갔다. 쨍그렁, 소리를 내며 주석으로 만든 포도주잔이 박살이 났다.
나는 커다란 참나무 탁자 뒤로 몸을 숨겼다. 하켈이 손에 잡히는 대로 칼을 휘둘렀다.
푹. 쨍.
하켈이 애지중지하던 얇은 칼이었다. 정신없이 휘두른 탓에 칼은 여인의 갈비뼈 사이에 박혔고 칼날이 부러졌다. 하켈 손에는 손잡이만 남아 있었다.
아아악.
마르가리타는 비명을 질렀다. 진짜 마녀라 해도 고통을 느끼는 구나, 그 와중에도 그 생각이 들었다.
"새벽의 주인이라고 했느냐, 마르가리타.”
마르가리타는 비명을 멈췄다. 다시 울음같은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떠올랐다.
“새벽의 주인. 비너스. 타락한 천사. 아침의 별”
관자놀이가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나는 말했다.
“루시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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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머리 속을 정리해야 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으로 앞뒤가 맞지 않았다.
어리석기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마녀들의 망치”를 그토록 여러번 읽고 공부했으면서 가장 기본적인 주의사항을 소흘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스티토리스의 주의 사항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했다. 십여년에 걸친 마녀 재판의 경험이 나를 오만하게 했다.
‘마녀의 맨살을 손으로 만져서는 안된다. 재판할 때는 반드시 옷을 모두 벗기고 온 몸의 털을 깎아라. 온 몸을 샅샅히 뒤져 마법의 도구를 숨기고 있는 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종종 마녀들은 음부나 항문 속에 마법 도구를 숨기는 일 조차 있다.’
‘종종 강력한 마녀는 육체적 접촉이나 마법 도구 없이 주문을 외는 것 만으로도 마법을 쓸 수 있다. 마녀를 재판장에 끌고 올때는 반드시 거꾸로 걷게해야 한다.’
‘재판관은 마법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성스러운 소금과 왁스를 항상 몸에 지녀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셨을때 말씀하신 마지막 일곱 단어를 종이에 쓴 후 병에 넣어 목에 걸어서 스스로를 지키라. 성물들을 몸에 지니는 것은 더욱 좋다.’
물론 나는 그 보호도구들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 성 안토니오의 무덤에서 스승님이 직접 훔쳐왔다는 성인의 손가락 뼈도 가죽끈에 묶여 내 목에 걸려 있었다. “사탄에게서 그리스도의 재판관을 보호하기 위함이니 성인께서도 기꺼이 이해해주시리라”라고 스승님은 말하곤 했다.
마녀 마르가리타는 하켈의 칼날이 폐에 박힌 채 정신을 잃고 있었다. 마녀가 숨을 쉴때마다 상처에서 피거품이 일었다. 폐를 상한 모양이다. 그러나 폐는 두개가 있다. 피를 많이 흘리긴 했지만 당장 죽지는 않을 것이다. 마녀재판관은 절반 정도는 의사나 마찬가지였다.
하켈도 놀랐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하켈, 저 마녀의 머리에 성유를 부어라.”
명령을 내려놓고도 멍청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에 성유를 붓는 것은 ‘침묵의 마법’을 깨기 위한 것이다. 재판관 코모는 머리에 성유를 부어 마녀들을 자백하게 해서 하룻밤 동안 41명을 불태워 죽였다고 인스티토리스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미 마르가리타는 자신이 마녀라는 것을 인정했지 않은가?
인스티토리스는 마녀들이 첫번째로 태어난 남자 갓난아이를 세례받기 전에 훔쳐서 오븐에다 다른 마법 재료들과 함께 구운후 가루를 내서 그 마법 가루를 몸에 지니고 다닌다고 했다. 마르가리타도 그것을 지니고 있을까?
아니다. 그것은 ‘침묵의 마법’을 강화하기 위한 마법이었다. ‘마녀들의 망치’는 마녀들은 자백시키는 법을 쓴 책이다. 저 마녀는 자백했다.
잠깐, 그렇다면 ‘침묵의 마법’이 깨졌다는 것인가?
악마의 표식 (diabolical mark). 그것이었군.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켈이 달군 송곳으로 마르가리타의 가슴을 찔렀을때 침묵의 마법이 풀리고 마녀의 본색이 들어난 것이다. 드디어 하나의 비밀이 풀렸다.
이제 어떻게 한다? 그것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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