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켈이 성유를 마르가리타의 머리에 부었다. 마르가리타는 온 몸에 진저리를 치며 비명을 지르다가 다시금 정신을 잃었다. 정확히 어떤 효과인지는 몰라도, 성유는 마르가리타에게 먹혀든 것 같았다.
마녀 재판관이 진짜 마녀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나의 위대한 스승님 조차도 이런 경우는 상상도 못해보셨을 것이다.
고문해서 마녀라는 자백을 받고 화형시킨다. 나의 직업은 간단한 일이었다. 돌에서도 눈물이 흐르게 만들 수 있고 진흙더미 조차도 마녀라고 자백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진짜 마녀가 나타난다면?
화형시키기는 아까왔다. 진짜 마녀란 흔히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티칸으로 끌고 가 최고 재판소에 보고를 해야 하나?
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지겨운 검은 법복을 벗고 진홍의 주교복을 입을 수 있으리라. 허리에 살이 붙기 시작한 베니스의 애인 대신 싱싱한 로마의 여인들을 마음껏 취할 수도 있으리라. 브룬디시로 은밀히 수입되는 동방의 자극적인 향료, 술, 하쉬쉬와 비단을 몸에 휘감으며 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영국인이었다. 허망한 꿈을 꾸는 대신 버릇처럼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진짜 마녀를 공개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하나의 결론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나의 스승이, 성스러운 인스티토리스와 그의 제자들이 죽인 모든 마녀들이 진짜가 아니었다는 것.
벌거벗겨진 채 천장에 매달려진 저 죽어가는 고깃덩어리는 마녀 재판의 알파와 오메가였다. 그녀의 정체가 밝혀진다면 마녀 재판 자체의 권위가 의심받을 것이다.
왕들은 마녀 재판을 싫어했다. 자기 정적들을 죽일 때는 기꺼이 마녀 재판관들에게 황금 주머니를 건넸지만, 일단 자기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등을 돌리기 일쑤였다. 왕들은 내가 잡은 진짜 마녀를 이용해서, 마녀 재판관들이 무고한 이들을 마녀로 몰아왔노라고 폭로할 것이다.
결론은 내려졌다. 할 일은 한 가지였다. 마녀 재판관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태워라.”
하켈이 화로를 마녀의 발 밑으로 끌어 당겼다. 마르가리타의 마른 발등에 즉각 불이 붙지는 않았다. 발바닥의 피부가 마른 종이처럼 벗겨지고 지방이 녹아 숯불 위로 떨어졌다. 역겨운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아아악.. 마르가리타는 정신을 차리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한 쪽 폐가 구멍이 나 있는 탓인지 비명 소리를 훨씬 작았지만, 더욱 처절했다.
“하켈, 오늘 일은 절대 입 밖으로 내어선 안된다.”
“예, 사제님.”
열기는 마르가리타의 몸을 천천히 녹여가고 있었다. 발뒤꿈치를 지나 그녀의 종아리가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포도주 저장실 안에서 네 번째 목소리가 들린 것은.
“인스티토리스가 훔쳐간 물건을 내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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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목소리였다. 어린아이와 어른의 목소리가 뒤섞인 것 같은, 묘하게 고저 장단이 뒤틀려 신경을 긁는 목소리.
심문장에는 세 사람 뿐이었다. 유일한 입구는 안에서 잠겨 있었고, 누가 들어온다면 눈치 못챌 리 없었다.
“누구냐?”
내 목소리에 떨림이 섞여 나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동시에 하켈과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심문장 어두운 한 구석으로 몸을 틀었다.
아무도 없었다.
잠시 심문장은 침묵 속에 빠졌다. 마르가리타의 잦아드는 신음 소리뿐. 녹아버린 피부 속에서 삐져나온 그녀의 발 뼈가 하얗게 열기 속에서 백열하고 있었다.
구석의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 움직였다. 하켈과 나는 반사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거대한 쥐 한마리였다. 어느새 가로챘는지, 마르가리타의 잘려진 손가락을 입에 물고 있었다. 회색 수염에는 피가 덕지 덕지.
아,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었다. 나는 또 한번 “마녀들의 망치”의 가르침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마녀들은 짐승의 형상으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거대한 회색 쥐가 갑자기 한 무더기 연기로 변했다. 내 눈앞에서 그 연기는 점점 커지더니 인간의 형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도망가야 한다. 하켈과 나는 문 쪽으로 뛰었다. 연기는 우리보다 더 빨랐다. 우리를 앞질러 문을 막아 섰다. 비칠 비칠 뒤로 물러섰다.
어느새 연기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벌거벗은 남자였다. 온몸은 상처와 더러운 털로 뒤덮여 있었다. 삐죽 삐죽 튀어나온 수염, 헝클어진 검은 머리. 인간의 것이 아닌 붉은 눈동자. 아직도 입에는 마르가리타의 손가락이 물려져 있었다.
우적 우적, 그 남자, 아니 그 괴물은 손가락을 씹어 삼켰다.
“니콜라스 플라멜의 제자여”
경악에 내 입이 벌어졌다.
“인스티토리스가 훔쳐간 것을 내놓아라.”
그 남자는 타 죽어가고 있는 마르가리타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무언가 내 뒷목에서 이상한 느낌이 흘렀다. 아까 마르가리타가 나를 바라보았을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 기억났다.
‘재판관들은 마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아서는 안된다. 마녀들은 시선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법을 부릴 수 있다. 재판관들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마녀들이 재판관을 쳐다보지 못하도록 항상 주의해야 한다.’ “마녀들의 망치”에서는 이것을 경고하고 있었구나!
남자의 입이 일그러졌다. 웃고 있었다.
“과연, 네가 갖고 있구나. ‘눈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보니 알겠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네 정체를 말해라 마법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심판을 행하는 재판관에게 무례를 범하지 말라.”
간신히 쥐어짠 목소리였다.
“플라멜의 제자여. 그대에게 해를 입힐 생각은 없다. 인스티토리스가 플라멜에게 맡긴 물건, 플라멜이 그대에게 전한 물건을 내놓으면 그대는 내일 아침 햇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켈, 저 남자를 포박해라.”
하켈이 몽둥이를 집어들고 떨리는 걸음으로 앞으로 나섰다. 검은 머리의 남자가 하켈을 노려보았다.
“하켈, 눈을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하켈이 더 이상 걸음을 떼지 못했다. 하켈은 몽둥이를 바닥에 버리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멍한 눈빛으로 그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녀들의 망치”의 경고를 무시한 댓가였다.
남자는 웃으며 탁자 위의 “마녀들의 망치”를 손짓으로 가르켰다.
“저 책을 제대로 공부했구나. 그러나 인스티토리스는 단순한 좀도둑이었다.”
남자가 한 걸음 다가섰다.
“물건을 내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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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무얼 달라는 거냐”
“아브라함의 책에서 찢겨나간 내 주인의 이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며 남자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섰다. 나를 쏘아보았지만 그의 ‘눈의 마법’은 무슨 이유인지 나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직 나에게 기회가 있을 지도 모른다.
벽에 붙여진 탁자 위에서 인두로 쓰기 위해 가져다 놓은 쇠꼬챙이 하나를 집어들었다. 죽을 힘을 다해 남자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검은 머리의 남자는 손쉽게 쇠꼬챙이를 빼았더니 그것으로 내 무릎을 갈겼다.
“아악”
육체적 고통이 처음인 것은 아니었다. 견습 수도사 시절 무수히 회개의 채찍을 내 몸뚱이에 휘갈겨 본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거의 20년 전의 일이다. 나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뼈는 상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몰려들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살려 다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주마. 돈을 원한다면 저 궤짝 안에 얼마든지…”
나는 손을 모아 빌었다. 살아나야 한다.
휙.
쇠꼬챙이가 다시 허공을 가르고 내 입을 정통으로 때렸다. 나는 차가운 돌바닥에 누워버렸다. 입안은 피와 이빨 조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어나라, 영국인 사제. 무릎 꿇어라.”
필사적인 힘으로 나는 몸을 일으켰다. 무릎을 꿇었다.
“살려 다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주인의 이름을 내놓아라.”
남자의 붉은 눈이 사납게 빛났다.
“난 그런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늘 밤 난 여기서 죽을 것이라는 강한 절망감이 밀려왔다.
남자가 한 손으로 거칠게 내 멱살을 잡았다. 엄청난 힘이었다. 손쉽게 내 몸 전체를 들어 올려 벽에 밀어 붙였다. 내 척추에 강한 충격이 왔다. 이제 마지막 순간인가.
“내 놓아라, 사제.”
그때, 그 남자가 잡고 있던 내 사제복 안에서 무엇인가 바삭 하고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성물을 가지고 있었구나.”
남자는 손을 놓고 뒷걸음질을 쳤다. 나는 바닥으로 미끌어져서 간신히 기태어 앉았다. 남자의 오른손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나는 내 가슴을 만져보았다. 성 안토니오의 손가락이 부서져 있었다. “마녀들의 망치”의 가르침이 날 살린 것이다.
불길은 점점 맹렬해졌다. 남자는 미쳐 날뛰었다. 불길은 이제 두 팔 모두를 태우고 있었다. 한 구석에 물이 가득 담긴 통이 있었다. 통을 발견한 남자는 팔을 통에 담궜다 빼냈다. 불은 오히려 더욱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남자는 무엇인가 입 속으로 빠르게 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마법도 소용 없는 듯 불은 여전히 맹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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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오른쪽 무릎이 후들거리고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느껴졌지만 다행히 뼈는 상하지 않은 듯 했다. 검은 머리의 남자가 버린 쇠꼬챙이를 집어들었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이미 그의 두 손은 검은 숯덩이였다. 불은 그의 어깨에 닿아 있었다. 묵직한 쇠몽둥이가 그의 뒤통수를 강하게 때렸다. 남자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앞으로 넘어졌다. 그와 함께 남자를 태우던 불도 갑작스럽게 꺼졌다.
퉷, 입 안에 고인 피를 뱉았다. 부러진 어금니 조각 몇개가 같이 바닥에 떨어졌다. 낡은 포도주 저장고는 지옥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르가리타의 벌거벗은 몸은 두 손목이 천장에 매달린채 뜨거운 숯불로 천천히 구워지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종종 그녀는 꿈틀 거렸다. 아직도 질긴 목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하켈은 아직도 멍한 눈으로 피가 흥건한 바닥에 주저앉아 벽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켈!”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화가 치밀어 손에 쥔 쇠꼬챙이로 하켈의 등짝을 휘갈겼다. 깜짝, 그가 정신을 차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저 남자를 살펴봐라.”
이제는 조심해야 했다. “마녀들의 망치”의 그 모든 경고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때 였다. 마녀와 마법사들의 몸에 손을 대는 건 위험했다. 그건 하켈의 일이다.
겁먹은 표정으로 하켈이 남자의 몸뚱이를 뒤척였다.
“죽지는 않았습니다.”
“다리를 잘라라.”
죽지 않았다면 그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다. 그는 무언가 찾고 있었고, 내가 그것을 갖고 있다고 했다. 확인해야 했다.
하켈이 마을 사람들이 준비해 놓은 장작 패는 도끼를 찾아왔다. 날이 제대로 서 있지 않았다. 하켈은 단번에 다리를 자르지 못했다. 한 쪽에 서너번이나 도끼질을 한 후에야 무릎 아래를 잘라낼 수 있었다. 잘랐다기 보다는 끊어 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통증에 남자는 정신을 차리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저항하지는 못했다. 하켈이 그 남자를 의자에 앉히고 밧줄로 목을 감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악마의 자식아. 묻는 말에 대답하라.”
남자는 나를 쏘아 보았다. 그러나 그의 ‘눈의 마법’은 여전히 나에게 통하지 않았다.
“네가 찾는 것이 무엇이냐?”
남자의 눈이 다시 이글거렸다. 그러나 곧 그는 체념했다.
“인스티토리스가 우리에게 훔쳐간 것이다.”
“거룩한 인스티토리스께서 너희 악마들의 사도들로부터 무엇을 훔쳤다는 거냐? 말이 되지 않는다.”
남자의 입이 한쪽으로 실룩였다. 그가 나에게 물었다.
“영국인 사제여, 말해 줘도 이제 변할 것은 없겠지. 너는 네가 믿는 신의 이름을 아느냐?”
무슨 소리일까?
“너희들은 네가 믿는 신의 이름을 잃어버렸다.”
나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갑자기 깨달았다.
“솔로몬의 신전 이야기를 하는 것이냐?”
“로마인들이 예루살렘을 불태웠을때, 네가 믿는 신의 이름을 적은 유일한 기록은 타버렸다.”
“네가 찾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네가 너의 신의 이름을 모르듯, 우리도 우리 주인 루시퍼의 진정한 이름을 알지 못한다.”
루시퍼(Lucifer). 그것은 라틴어로 ‘빛을 지닌 자’라는 뜻이다. 이름이 아니었다.
“유태인들이 그들의 신전에 신의 이름을 보관했듯, 우리도 루시퍼의 이름을 오직 한 곳에 보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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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의 남자는 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인스티토리스의 군대가 왈덴시안의 형제들을 공격했을때, 그는 책 한권을 압수했다. 그러나 어리석은 그는 그 책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
“성스러운 재판관을 모욕하지 말라, 악마의 사도여.”
피식, 고통 속에서도 그 남자는 웃었다. 내가 물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책” 인가?”
“그렇다. 유태인 아브라함의 책 (TheBook of Abraham the Jew). 위대하신 사도 아브라함 엘라이자께서 루시퍼의 명으로 지으신 책이다.”
아브라함 엘라이자. 그 이름은 나도 알고 있었다. 위대한 유태인 연금술사였다고 스승님께서 몇번 말씀하셨던 적이 있다. 스승님께서는 연금술에 관심이 많으셨다.
연금술은 그러나 마녀들의 마법과 달랐다. 종종 마녀재판관들은 그 차이를 두고 학문적인 논쟁을 하곤 했지만, 주로 돈 많은 귀족과 사제들의 영역이었던 연금술은 마녀 재판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세상에 오로지 단 한권만 존재하는 그 책에, 루시퍼의 진정한 이름이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인스티토리스가 그 책을 우리에게 빼앗아 갔다.”
“그 책을 왜 내게서 찾는 것이냐?”
“인스티토리스는 그 책을 너의 스승, 니콜라스 플라멜에게 전했다.”
있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내 스승은 연금술에 관심이 많았고 아브라함 엘라이자는 유명한 연금술사였다. 인스티토리스가 우연히 아브라함의 연금술책을 발견했다면 내 스승에게 선물로 주었다는 것은 충분히 일리있는 일인 것이다. 그러나 재판관은 아무것도 함부로 믿으면 안된다.
“그것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우리는 지난 60년 동안 그 책을 찾아왔다. 지난 달에야 그 책의 행방을 찾았지. 니콜라스 플라멜이 직접 나에게 이야기했다. 그의 영국인 제자가 루시퍼의 이름을 갖고 있노라고.”
“내 스승께선 나에게 그런 책을 주신 일이 없다.”
“니콜라스 플라멜은 막돼먹은 인간백정 인스티토리스보다 영리한 인간이었다. 그는 아브라함의 책을 수십년간 연구하다 루시퍼의 이름의 비밀을 발견했다.”
잠깐, 무엇인가 빼먹은 것이 있었다.
“지난 달에 내 스승을 만났다고?”
남자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그의 심장과 간을 개에게 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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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격분했다. 하켈에게 고통을 가하도록 할까 생각했지만 아직은 물어볼 것이 많았다.
“거짓말이다. 스승님은 폴란드의 수도원에 안녕히 계시다.”
말을 하면서도 나는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알았다. 니콜라스 플라멜, 나의 스승, 위대한 마녀 재판관은 죽었다. 그리스도의 평안이 스승의 영혼과 함께하길.
“너의 스승은 너에게 루시퍼의 이름을 넘겼다고 말했다. 마르가리타는 너를 유인하기 위해 이곳 시골 무지랭이 몇을 유혹해 사바스를 열었다. 네가 달군 송곳 이나 성물따위를 쓸 지는 예측하지 못했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화로위에서 구워지고 있는 것은 너의 몸뚱이였을 것이다. ”
“아브라함의 책을 찾는 이유가 무엇이냐. 루시퍼의 진짜 이름 따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너의 신에겐 가능하지만 나의 주인은 아직 성취하지 못한 일 때문이다.”
“다시 한번 주님과 사탄을 비교하면 너의 목을 자르겠다.”
“마음대로 하라, 사제.”
그가 입을 다물었다. 궁금한 것은 나였고 그는 이미 절반은 죽은 몸이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내가 패배를 인정하고 침묵을 깼다.
“그 성취하지 못한 일이 무엇인가?”
“생명을 낳는 것이다.”
생각지 못한 답이었지만 사실은 익숙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악마와 교접한 마녀들이 잉태를 할 수 있는지는 오랫동안 마녀 재판관들 사이의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인스티토리스의 “마녀들의 망치”에도 이 문제에 대해 긴 논문이 실려 있다.
“오로지 주님만이 생명을 창조할 수 있으시다. 어찌 사탄 따위가 영혼을 낳을 수 있겠느냐.”
“영국인 사제여, 상상해 보거라. 루시퍼의 영혼을 지닌 인간들이 대지를 활보하는 광경을.”
나는 상상했다.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악마가 해낸다. 창조주의 유일성이 부정된다. 그것은 세상의 종말이다.
“루시퍼의 이름과 생명을 낳는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남자는 망설였다.
“이미 세상의 시작과 더불어 결정된 일, 그대에게 말해도 변할 것은 없겠지.”
나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었다.
“루시퍼의 아들은 세상에 온다. 그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다.”
이것도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성서에 엄연히 기록된 진리이기 때문이다. 계시록은 한 구절 한 구절 모조리 외고 있었다. 적그리스도는 오로지 주님 앞에 무릎꿇게 될 것이다. 적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은 주님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아마겟돈을 부정한다면 나는 그를 마녀로 지목하여 불태웠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책에는 루시퍼의 아들이 언제, 어떤 이름으로 올지 기록되어 있다.”
“루시퍼의 이름이란게 고작 그것이냐?”
“어리석구나 사제여. 생명있는 것들만 이름을 가질 수 있다.”
그가 옳았다. 적 그리스도는 세상에 올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구원자로 받아들일 것이며 적그리스도는 거짓으로 세상을 기만할 것이다. 혼란은 누가 적그리스도인지 모르기 때문에 온다.
이 남자는 나에게 적그리스도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 옆에 서 있는 하켈에게 명령했다.
“하켈, 성서를 건네다오.”
하켈이 너댓 걸음 떨어진 테이블 위에 놓여진 성서를 가져오기 위해 등을 돌렸다. 나는 하켈이 남자의 다리를 잘랐던 도끼를 집어 들고 온 힘을 다해 하켈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무딘 도끼는 하켈의 목을 자르지 못하고 그대로 박혔다.
하켈이 피거품을 문 채 몸을 돌렸다. 난 뒷걸음을 쳤다. 그가 나를 향해 두 걸음을 떼었다. 그러나 더 걷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몸에 경련이 일었다. 나는 오른발로 하켈의 머리를 밟고 도끼를 빼냈다.
남자가 냉소했다.
“훌륭하다, 영국인 사제. 그대가 나의 주인을 섬겼다면 크게 칭찬받았을 것이다.”
나는 도끼를 휘둘러 그의 머리에 박았다. 퍽. 회색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천천히 내 얼굴에 묻은 남자의 뇌를 손으로 닦아 냈다.
마르가리타는 이미 죽어 있었다. 온 몸의 피부가 녹아 내려 있었다. 나는 탁자에서 푸른 사슴가죽 장정의 “마녀들의 망치”를 집어 들어 화로 안에 던져 넣었다.
나는 포도주 저장고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이미 새벽이었다. 내 목에는 나의 스승 니콜라스 플라멜이 직접 두 손으로 걸어준 작고 검은 유리병 하나가 걸려 있었다. 스승님은 그것이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후 말씀하신 마지막 일곱 단어를 적은 양피지를 담은 병이라고 했었다. “마녀들의 사악한 마법으로부터 재판관을 지켜주는 주님의 은총이니 소중히 간직하라.”
난 한번도 이 유리병을 열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 유리병 안의 내용물이 무엇인지 이제는 알고 있었다. 루시퍼의 이름. 루시퍼가 창조하는 첫 생명이 어떤 이름으로 언제 세상에 올 지 그 비밀이 이 유리병 안에 적혀 있다.
비밀은 권력이었다. 난 권세와 재물, 영광과 향락 모두를 약속 받은 것이다.
단, 지금 이 유리병을 열어도 비밀을 당장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인스티토리스는 자신이 무엇을 손에 넣었는지 눈치도 채지 못했다. 스승님 또한 그 비밀을 풀기 위해 평생동안 연금술을 연구해야 했다. 모든 예언이 그러하듯, 루시퍼의 이름 또한 복잡한 암호일 것이고, 스승조차 그 암호를 제대로 풀었는지는 자신할 수 없었다.
연구할 시간이 필요했다. 난 영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영지로 돌아가 이 비밀을 풀어내야 할 것이다. 몇 년, 몇 십년이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남자가 옳았다. 생명을 가진 것들만 이름을 가질 수 있다. 지금 내 목에는 모든 생명의 운명을 결정할 비밀이 걸려 있다. 나는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다. 내 이름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나는 결혼할 것이고, 나의 이름을 아들에게 물려줄 것이다. 아이작 뉴턴이라는 나의 이름을.
악마의 새벽 별, 금성이 떠오르고 있었다.
* 하인리히 인스티토리스 (혹은 하인리히 크라머)는 실존했던 마녀 재판관이며 1486년 “마녀들의 망치”를 출판했다. 이 소설에 인용된 “마녀들의 망치” 내용은 모두 실제로 하인리히 인스티토리스의 책에 나오는 것이다.
* 인스티토리스는 실제로 왈덴시안 교도들을 재판했다. 왈덴시안이란 당시의 이교도 집단이었다.
*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은 실제로 평생동안 연금술과 성서를 연구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2060년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 중세 유럽에서는 연고 형태의 환각제가 유행했다.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마녀의 이미지는 환각 연고를 봉에 발라 민감한 여성의 질 부분에 문지르곤 했다는 여성들의 환각제 사용에서 비롯된 것이다.
* 재판받을 때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마녀라는 논리는 실제로 “마녀들의 망치”의 중요한 부분이다.
* 십계명에도 하느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되어 있지만, 예루살렘의 유태교 대신전에는 하느님의 이름이 비밀리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불태웠을때 이 이름도 소각되어 사라졌다.
* 니콜라스 플라멜은 실존했던 프랑스인 연금술사다. “해리포터와 철학자의 돌” 에 나오는 덤블도어의 친구가 바로 니콜라스 플라멜이다. 그는 원래 서점 주인이었는데 우연히 구입한 “유태인 아브라함의 책”에서 연금술의 비법을 발견해서 일반금속을 금으로 바꾸고 생명의 영약을 만들 수 있는 ‘철학자의 돌’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그는 일기장에 금을 만들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파리에는 그가 살았던 집이 아직도 남아 있다. 니콜라스 플라멜의 집은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집으로 알려져 있다.
* 실제로 마녀재판과 왕권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었다는 연구가 있다. 반드시는 아니지만 왕권이 강력하게 미치는 곳에서는 상대적으로 마녀재판이 드물었고 그 강도도 낮은 편이었다. 영국의 경우 마녀 재판에는 30명이 넘는 재판관이 동원되었고 공식적으로 사형된 케이스는 81명에 불과하다.
* 마르가리타란 이름은 러시아 소설가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소설 역시 마녀를 다루고 있다.
* 하켈이란 이름은 “니벨룽의 반지”에 나오는 기사 “하겐”을 살짝 변용한 것이다.
"마녀들의 망치" 원문을 보시려면
http://www.malleusmaleficarum.org/index.html
안티오키아의 마르가리타(? - 304년) 또는 마리나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동정녀 순교자이자 14성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리스도교의 성인. 로마 가톨릭에서의 축일은 7월 20일, 동방 정교회에서의 축일은 7월 17일이다. 마르가리타는 라틴어로 진주라는 뜻이며, 회화에서는 일반적으로 양을 돌보거나 십자고상으로 드래곤을 찌르는 젊은 여인으로 묘사된다. 농부·임산부·교사·군인의 수호 성녀이다.
안티오키아의 마르가리타에 관한 이야기는 중세의 전설에서 유래한다. 역사적으로 마르가리타는 오늘날의 터키인 안티오키아 출신의 젊은 여인으로 5세기 혹은 4세기에 살았던 것으로 보이며, 4세기 초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 때 순교한 것으로 추정된다. 교황 젤라시오 1세는 마르가리타에 관한 전설을 출처가 의심스러운 외경이라고 선언했으나 라비누스 마우루스의 순교록에 다시 수록되면서 마르가리타의 명성은 지속되었다.
《황금전설》에 따르면, 마르가리타는 귀족 출신이었으며 이교 사제 테도오시우스의 딸이었다. 그녀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어 어느 그리스도인 유모의 보살핌 아래 자라 자연스럽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배우고 세례를 받았다. 그리스도교를 신봉하게 된 날부터 태도가 돌변한 딸을 보고 의심을 갖게 된 그녀의 아버지는 어느 날 그녀를 다그쳐 그녀의 개종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가 난 아버지는 딸을 내쫓아버렸다. 집을 나온 마르가리타는 이후 귀족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유모와 함께 천한 양치기 생활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녀가 14살이 되던 해, 그 지방 장관으로 부임한 올리브리우스가 우연히 양을 돌보던 그녀를 보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녀가 자유인이라면 자신의 아내가 되고 노예라면 첩이 되어 달라고 애원했다. 이에 마르가리타는 자신이 귀족 신분이며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밝혔다. 올리브리우스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위협하였으나 마르가리타는 그의 요구를 완강히 거부했다. 그 결과 올리브리우스는 격분하여 그녀를 체포하여 갖은 고문을 가하고 어두운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그녀가 감옥에 있을 때 한 악마가 드래곤의 형상으로 변모하여 나타나 그녀를 집어삼키고 말았다. 그러나 이빨로 씹히지 않고 그저 꿀꺽 삼켜졌기 때문에 다행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고 성호를 그으며 하느님에게 계속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했다. 그러자 갑자기 드래곤의 배가 갈라지면서 마르가리타는 상처 하나 없이 온전한 모습으로 빠져나왔다.
며칠 후 그녀는 다시 법정으로 소환되어 갖은 형벌을 받았지만 하느님의 가호로 그녀의 몸에는 상처 하나 생기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마지막에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마르가리타가 처형되기 직전 기도를 올리자 하늘에서 “너의 기도를 들었노라”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 일로 인해 처형장을 지켜보던 수많은 관중들이 감동을 받아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한편, 마르가리타는 잔 다르크에 나타나 하느님의 계시를 알린 성인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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