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설

영국 발라드제독의 이순신 제독의 평가 (펌)

수水 2005. 5. 14. 13:17

본 분들도 계시겠지만 못 본 분들을 위해서 번역을 대대적으로 추가하여 직접 올립니다.

짤리거나 작게 보이면 사진을 클릭하면 다 보입니다. 사진의 빨간줄은 포토샵으로 한 것입니다.

 

음~알만한 분은 이 저자가 누군지 아실 겁니다. 발행년도가 1921년이네요. 참고로 저때 박정희는 4살이었습니다.-_-;;;

 

어디서 많이 본 이름이 보이지요? 참고로 '이순' 을 이름으로 보고 '신'을 성으로 본 것 같습니다. 이순신 앞에 붙는 형용사에 유의하시길.

 

 

그 분 등장입니다. 왼쪽 줄친 걸 대충 번역하면 "이순신은 서양 사학가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그로 하여금 넉넉히 위대한 해군 사령관 중에서도 뛰어난 위치를 차지하게 하였다. 이순신은 전략적 상황을 널리 파악하고 해군전술의 비상한 기술을 가지고 전쟁의 유일한 참 정신인 불굴의 공격 원칙에 의하여 항상 鼓舞된 통솔 정신을 겸비하고 있었다. 어떠한 전투에서도 그가 참가하기만 하면 승리는 항상 결정된 것과 같았다. 그러나 그의 물불 가리지 않는 맹렬한 공격은 절대로 맹목적인 모험은 아니었다. 그는 전투가 벌어지면 강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나 승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신중을 기하는 점에서 넬슨과 공통된 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그 당시 동양의 해전 양상을 설명하는데 서양과 마찬가지로 동양에도 화약병기와 대포가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배에는 아직 장비되지 않았다고 하네요-_-;;; 1921년이라는 시대적 한계에 사료부족이 원인인 듯.(책을 쓰면서 주로 일본 사료를 참조한 것 같음)

그리고 그 밑에는 거북선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뭐 다 아는 내용이니 넘어가고 맨 밑을 보니 거북선은 그 당시의 '드레드노트' 였답니다.

참고로 1906년 영국에서 건조된 전함 드레드노트는 최초로 구경장이 통일된 12인치 포를 10문 탑재하고(이전까진 구경장이 다른 주포들을 혼재) 대형함에서는 최초로 증기 터빈을 채용하여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21노트라는 속도를 실현한데다, 중앙집중화된 사격통제장치를 장비하여 일제사격(salvo)이 가능했던 전함이었습니다.

 그때까지의 전함들을 하루아침에 구식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혁명적인 전함이어서 전함 분류도 전노급(Pre-Dreadnought), 노급(Dreadnought)으로 나누지요. 즉 거북선은 이전 세대의 전투함들과는 다른 더 발달되고 혁명적이었던 전투함이었다는 뜻 같음.

 

 

왼쪽을 대충 번역해보면 이순신은 이제 제해권(의역...)을 라이벌(적)의 염려 없이 장악하였고 이는 전략적 관점에서 보면 그가 지상을 훌륭하게 장악하였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그는 적 함대를 소멸시키고 제독이라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성공가능한 위치를-마치 나일(전투) 이후의 넬슨과 비슷한- 점유하고 적 지상군의 연락망에 효과적으로 걸터앉았다.(즉 적 지상군의 연락망을 효과적으로 방해하였다는 뜻 같음) 그는 이제 과실을 따려고 하였다.

(그보다) 뒤떨어지는 판단을 하는 많은 지휘관들은 만약 이순신의 위치에 있었다면, 놀라운 성공에 만족하여 더 큰 규모의 포획(전과)를 바라고서는 지금 현재 위치에 있도록 결정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행동으로 판단컨대, 이순신은 이전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았고 그의 시야는 절대로 컴파스의 한쪽에만 국한되지 않았다.(즉 한쪽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뜻 같음) 그의 시야는 수평선 전체에 걸쳐있었고 그는 최소한 더 많은 호위함대가 이전처럼 주(main) 항해로를 따라 오지 않을 것임을 인식한 것처럼 보인다. 툴룽에서의 넬슨처럼 그는 적의 움직임을 감지하기 위해 한번에 두 방향으로 감시를 늦추지 않았다.

이순신이 그의 관할구역에 없는 사이 그가 모르는 루트로 일본이 보급을 할 가능성이 언제든지 있었기 때문에. 오른쪽 아래는 날짜가 7월 9일인걸로 봐선 한산도 대첩이네요.

 

앞장의 한산도 대첩 부분부터 대충 해석하면... 7월 9일 새벽에, 호위함대가 한국 함대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나 먼 거리를 두고 한국 제독(이순신)은 적이 도망칠 것을 염려하여 그의 통상적인 작전인 직접 공격을 버리고 후퇴하는 것 처럼 속이는 작전(계략)을 하였다. 이 계략은 완벽하게 성공하였고, 일본 제독(미역 웰빙의 선구자 와키자카)은 나는듯이 도망치는 적을 잡는데 주저하지 않고 모든 전투함을 동원해 대대적인 추격에 나섰다. 이순신은 너무 빨리 후퇴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적들이 일렬로 잘 늘어서도록 놔두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이순신 함대는 갑자기 16점 회두(해군용어:180도 회전)를 하였는데 이러한 기동은 일반인들이 종이(책)으로 보면 간단하게 보일지 모르나 오직 해군 장교들만이 잘 훈련된 함대의 표준으로 받아들일 것이다.(즉 잘 훈련된 함대만이 할 수 있는 기동이다라는 뜻이겠죠) -->앞에서 말했듯이 발라드 제독은 조선 해군 전술이 충파와 불화살, 보딩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1921년이라는 시대적 한계 때문인 것 같은데 뭐 아주 어렸을적에 본 이순신 위인전에도 조선수군이 포격전보다는 박치기 공격을 주로 하는 것 처럼 묘사되었죠. 그리고 Ballard 제독은 한산도 대첩을 10만 예비병력이 탑승한 수송함대와 그 호위함대를 격파한 전투로 잘못 알고 있더군요.(엄청난 뻥튀기) 이건 아무래도 징비록에 기록된, 소서행장이 선조를 협박했다는 문서에서 나온 말(수군 10만이 서해를 돌아...운운)을 오해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산도 대첩이 벌어진 장소는 책 뒤의 지도를 보니 무려 제주도와 전라도 사이의 드넓은 바다-_-;;;

 

오른쪽은 아마 이렇게... 이상이 위대한 한국 제독이 이룩한 놀라운 위업이었다. 6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순신은 일본의 함대를 파괴하여 본국과의 통신 연락망을 끊고, 호위 선단을 전멸시켜 육지에서 승승장구하던 일본군을 위험에 빠트림으로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심찬 계획을 철저한 파멸로 이끄는, 해전사에서 비길 데 없는 일련의 승리를 거두었다.

 

심지어 넬슨도, 블레이크도, Jean Bart도 무자비한 압제 하에 있는 작은 나라(1921년에 쓴 책이면 당시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언급한 것이겠죠?)의, 이 거의 알려진 바 없는 대표자보다 더 뛰어난 성취를 이룰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에 대한 기억이 그의 본국을 벗어난 어느 곳에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편견 없고 공평한 재판관이라면 어느 누구도 그가 타고난 지도자 가운데 한명으로 인정받아야 함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왼쪽은 이순신에 대한 평가..."영국인으로서 넬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독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란 항상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대접받아야 하는 인물이 있다면, 패배를 전혀 모르고 전투중 전사한 위대한 아시아의 해군 제독(이순신)이 되어야 할 것임은 틀림이 없다"<---자존심이 강한 영국인으로선 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인 것 같습니다.

 

바로 밑에는 나폴레옹의 말을 빌려 지휘관의 중요성을 말하네요. "적어도 바다에서는, 열등한 자원으로 전투(일)를 해야 했던 이순신만큼 나폴레옹의 '전쟁은 병사들의 일이 아니라 지휘관 한 사람의 일이다' 라는 격언을 철저하게 증명한 지휘관은 없다" 라고 의역이 될 것 같군요. 즉, 전쟁에서는 병사들보다는 지휘관이 훨씬 중요하다는 이야기...

 

 오른쪽을 대충 번역해보면 더군다나 이순신은 더 좋은 전투함(거북선)을 개발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가장 적절하게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는 사실상, 그의 업적이 각각 다양한 관점에서 비판해 보아도 완벽한 것으로 보아, 처음부터 끝까지 과장하지 않고, 절대로(never) 실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이건 제가 두들겨 맞춘 번역입니다.

 

영어 잘하시는 분이 정확히 해주셨으면ㅠ.ㅠ) 아주 처음부터, 그는 한국 함대를 해안을 둘러싼 몇 개의 고정된 지점에 분할하여 배치하는 것으로는 일본 함대가 바다를 통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인식하였다. 이러한 논거가 박약한 전략(주: 16세기 당시에는 그랬다는 말 같습니다)은 오늘날(20세기 초) 잘 이해되고 있지만 그의 시대에는 실재(實在)하는 해군 전략의 원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 자신만의 독창성(사전을 보니 이니셔티브에 독창성이란 뜻도 있더이다)으로 전쟁을 해야 했다. 그는 상황을 너무 명확하게 인식하였지만, 그의 올바른 방향의 타고난 자신감은 그를 책임감의 공포(주:관할구역이었던 전라좌수영을 지켜야 하는 의무 같음)로부터 해방시켰고, 그의 타고난 용기는 지속되었다.

처음 그의 관할구역을 떠날때 그는 적을 찾아 나섰지만, 적 수송선단을 추격하기 위해 공격 가능한 범위에 있는 일본 함대가 존재하는 것을 간과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과일(목표)에 다가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날카로운 도끼로 나무를 베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의도적으로 처음부터 적 전투함대를 공격하여 철저히 괴멸시킨 다음, 그의 활동범위를 적 연락망의 한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로 확산시켰다.

 

그의 전체 업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그에게는 그가 전범으로 삼을 이전 역사로부터의 아무런 교훈도 없었지만 명백한 결과를 만드는 것 처럼 전쟁을 하였고, 그 자신을 조국의 방패로서 거대한 희생으로 하여 전쟁을 끝나게 하였다. -->즉 이순신은 시대를 앞서가는 전략가였다는 소리

 

위의 내용은 출처만 밝히시면 어디라도 퍼가실 수 있는데요, 뭐 외국인들의 이순신에 대한 평가가 조작이니 뻥튀기니 하는 글을 봐서 이렇게 스캔해서 올립니다.

 

이상은 제가 경진님 홈피등에 올렸던 것을 약간 손봐서 다시 올리는 것입니다.

 

혹 한국인에 대한 립서비스라고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고 한국에 책 팔아먹으려고 그랬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노파심에서 말합니다.

1921년이면 그당시 한국은 일본 식민지였는데, 영국 해군 중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식민지가 된 나라의 장군에게 립서비스해줘서 얻을 게 뭐가 있습니까?

그리고 책을 팔아먹으려면 식민지인 한국보다는 그 당시 인구도 더 많고 소득도 더 높은 일본 입맛에 맞춰 책을 썼겠지요.

그리고 박정희때문에 충무공이 미화되었다고 하는 일부 원균명장론자들에게 묻습니다.

툭하면 박정희 때문에 이순신이 미화되었다고 그러는데 박정희가 1921년으로 타임머신타고 가서 발라드 제독에게 뇌물이라도 줬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덕수 이씨가 줬다는 말인지.

그리고 차라리 발라드 제독이 원균의 행동을 몰랐으니 원균에겐 다행입니다.(이책에서 존재감이 거의 無, 이름도 안나오고 another korean admiral로 처리)

과연, 한 나라 해군 전력의 90% 이상을 말아먹고 육지로 도망가서 행방불명된 인간을 당대 최강이었던, 영국 해군 중장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평가할까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해군에서는 지휘관이 배를 버리는 것을 최악으로 보는데 그것도 모잘라 가장 먼저 육지로 도망쳤으니...

원균명장론자들은 이걸 순국어쩌구 하면서 미화하는데 수군 장수가 육지에 배를 대고 가장 먼저 오른 것 자체가 도망입니다.

후퇴라고 우길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이야기하는데 후퇴란 부대 편제를 유지하면서 최대한 질서정연하게 전장을 이탈하는 것을 말합니다.

 원균이 그런 노력을 했습니까?

 

참고로 2차 대전 당시 그라프 슈페의 랑스도르프 함장은 자침한 것을 자살로 책임을 졌고 미드웨이 해전에서 야마구치 다몽 소장은 퇴함할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남아 패전의 책임을 지고 항공모함 히류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거늘..

 

.그리고 미드웨이 해전 당시 요크타운 함장 엘리어트 벅매스터는 배를 버릴때도 침착하게 마지막까지 남아서 함의 여기저기를 살피며 남아있는 장병이 있는지를 다 확인 한 다음 마지막으로 퇴함합니다.

 

 최소한 배를 버리더라도 요크타운 함장같은 품격을 원균에게 바라는 건 무리인가요?

 

참고로 앞의 세 사람도 제가 알고있는 범위에서는 명장이라는 소리까진 못듣는걸로 알고있습니다.(랑스도르프는 격침한 상선들 선원을 후대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고 야마구치는 일본 항공함대의 준재라는 평가가 있긴 하지만)

 

그런데 한 나라 해군 전력의 90%를 날리고 패전의 책임도 지지않은(앞에서 말했듯 육지에 오른 것 자체가 도망) 원균을 명장이라고 하면 랑스도르프와 야마구치는 도대체 뭡니까?

 

 원균명장론자들의 명장 기준은 정상인과는 조금 다른가보죠?-ㅅ-;;;<---이건 불멸 공홈에서 충무공을 깎아내리려는 일부 무리들때문에 말이 조금 거칠어졌네요.

 

그러나 이 책의 아쉬운 점도 있으니, 조선수군의 전술을 충각공격과 불화살 공격등으로 잘못 알고 있고, 지명과 전과가 자세하지 않으며-옥포해전 26척, 당항포 13척, 한산도 59척 처럼 세세하게 쓰지않고 그냥 '한국 남쪽 큰 섬 앞에서 적 함대 대부분을 쳐부셨다'라는 식으로 뭉뚱그려 묘사-

 

그리고 충무공은 거의 100% 전투함대만 상대하였는데 발라드 제독은 거의 50%, 50%로 수송함대도 날려버리고 전투함대도 상대한 것으로 잘못 쓰고 있습니다.

 

뭐 발라드 제독은 보급선을 차단한 것을 더 높게 쳐서 그런 놀라운 찬사를 보내는 것 같고 결과적으로 보면 일본의 수륙병진 전략을 좌절시켰으니 결과적으로 보면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그리고 충무공은 전략가라기 보다는 뛰어난 전술가인데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이 미흡하고 명량대첩은 그냥 이겼다고 하고는 한두줄로 얼렁뚱땅 넘어갑니다.

 

 만약 발라드 제독이 충무공이 순수 포격전을 했다는 사실과 명량대첩의 그 말도 안되는 상황을 알았다면 과연 어떤 수준의 찬사를 보냈을까나? 지금도 최상급인데...

 

그리고 책에 쳐진 까만 줄은 컴퓨터용 b 연필로 긋고 스캔이 끝난 다음에는 지우개로 깨끗이 지운 것이고 빨간줄은 포토샵으로 한 것입니다.

 

이상 허접한 번역을 끝까지 봐주셔셔 감사합니다.(이런 책은 대한민국 해군에서 앞장서서 번역해야하는 거 아닌가-_-;;;) 오역이나 추가할 것이 있으면 지적바라고 마음에 드셨다면 리플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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