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헛제삿밥>
헛이란 접두어는 ‘가짜’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헛제삿밥이란 제사를 지내지 않고 제삿밥처럼 해먹는 밥을 말한다. 제삿상에 오르는 각종 나물에다 적과 부침개를 제사도 지내지 않고 먹는 것이다.
안동은 ‘양반 동네’였다. 그렇다고 해서 안동 사람 전부가 다 양반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상놈들도 있었다. 권세깨나 누렸던 양반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풍산 유씨를 비롯해 안동 권씨, 장씨, 김씨 등 안동의 토착 양반 세력이 조선 시대에 한가닥씩을 했다.
양반이 양반일 수 있는 조건 중에는 제사라는 것이 있다. 문중을 귀히 여기는 그들은 4대 봉사는 예사이고 7대조, 8대조 봉사도 한다. 명절제사, 기제사, 사당제사 다 합하면 1년에 스무 번은 족히 제사를 지내야 하는 집들도 있다. 그러니 제삿밥을 참 많이도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제사도 지내지 않고 제삿밥을 지어 먹었다니. 물리지도 않는가.
헛제삿밥에는 양반답지 않은(?) 속임수가 숨어 있다. 한반도의 온 민족이 배불리 먹을 수 있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이다. 보릿고개를 목숨 붙들고 넘기기도 어려웠던 시기가 얼마 전까지 있었다. 그러나 양반들은 배고픔을 몰랐다. 하지만 감히 굶주리고 있는 상놈들이 바로 옆에 사는데 고기 굽는 냄새를 풍기면서 기름진 음식을 해먹을 수는 없었다. 양반이 지켜야 할 도리에 염치도 있는 것이다. 사랑에 앉아 이런 궁리 저런 궁리를 했을 것이다.
제사가 하도 많으니 곳간에 제수는 비축되어 있겠다, 이걸 어떻게 해먹느냐가 문젠데…. 아랫것들이 굶주리고 있을텐데 비린내 한번 슬쩍 피워도 지놈들만 배불리 먹는다고 욕할텐데…. 아, 있어도 걱정이란 말야. 보름 전에 제사 지냈지. 이놈들 우리 제삿날 알까. 나도 헷갈리는 제삿날을 어찌 알겠어. 그래! 제사 지낸다고 하자. 감히 조상님께 올리는 음식 두고 시비 붙자고는 않겠지.
이렇게 해서 헛제삿밥이 탄생한 것이다.
(이상은 안동에서 떠도는 헛제삿밥의 유래 이야기를 재구성해 본 것이다. 혹 안동 양반을 욕되게 표현한 구석이 있어도 양반님네들의 넓으신 아량으로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일부의 주장에 의하면 사대부가 밤에 사랑에 앉아 글을 읽다가 출출하여 “지난번 제사 때 남은 음식 없냐”고 찾자 말 잘 듣는 며느리가 제사 음식을 다시 장만하여 올렸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향토 음식을 취재하다 보면 장사 잘되는 집에 가는 일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연방 손님들이 들이닥치는데 주인장을 붙들고 이것저것 시시콜콜 물어보자니 자연 눈치가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취재 일정을 약속할 때 ‘언제쯤 한가합니까’ 하고 물어보게 된다.
안동 민속박물관 옆 야외박물관에 있었던 까치구멍집 주인과 약속을 할 때에도 그렇게 물었다. ‘오후 3시 30분이면 좋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러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취재를 하다 보면 약속 시간을 정확히 맞추기가 어렵다. 까치구멍집 앞에 도착한 시간이 2시 30분.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 멀리서도 그 집에서 나는 사람들 소리가 대목 오일장에서 나는 소리처럼 들렸다. 들어갈 수가 없었다. 약속 시간이 아직 1시간이나 남았고 손님이 저렇게 많은데….
까치구멍집은 안동 민속박물관 옆 둔덕 위에 있다. 1976년 11월 안동댐이 완공되면서 수몰 지구인 와룡면 가류동에 있던 집을 민속적 가치가 있다 하여 이곳으로 이전을 한 것이다. 지붕 용마루 끝에 구멍이 나 있는데 이 구멍이 까치집 같다 하여 까치구멍집이라 부른다.
1시간을 기다릴 요량으로 까치구멍집을 지나 둔덕 마루에 올라 카메라 가방을 내려놓고 앉았다. 그 자리에서는 까치구멍집의 지붕이 빤히 내려다보였다. 까치구멍집에서는 시끌시끌한 사람들 소리와 함께 구수한 음식 냄새가 흘러나왔다. 쪼르르 하고 배에서 소리가 났다. 헛제삿밥 맛을 보기 위해 아직 점심을 먹지 않고 있었다. 다른 식당이나 가게에 가서 대충 배를 채울 수도 있지만 향토 음식을 취재하러 와 어찌 그 음식을 먹기 전에 주전부리로 입맛을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까치구멍집 담 밖으로 흘러나오는 구수한 음식 냄새를 맡으며 조선시대 상놈의 서글픔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음식을 앞에 놓고 차별을 당하는 게 가장 서러운 일이라고 하던데….
드디어 1시간이 지났다. 아직 손님이 북적거렸으나 더 이상 눈치볼 겨를이 없었다. 주린 배를 안고 까치구멍집을 향해 당당히 들어갔다. 인심 좋게 생긴 아주머니가 상을 내어왔다. 콩나물, 무나물, 가지나물, 고사리나물, 취나물, 호박나물, 배추나물이 든 대접에다 밥을 턱 얹고 짭짜름한 조선간장을 척척 끼얹어 꾹꾹 비볐다. 쇠고기, 무, 두부로 끓인 탕국도 조금 넣었다. 게눈 감추는 속도가 무에 빠를 것인가.
배를 웬만큼 채우고 산적과 부침개를 하나하나 음미했다. 먼저 상어적.큼큼하고 짭짤한 게 별미다. 다음은 고등어·쇠고기·동태·북어를 꿴 산적. 하나하나 양념을 달리해 산적을 했다. 적에는 안동 지방 제사 음식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내륙 지방이라 싱싱한 해물을 구하기 어려우므로 오래 두어도 잘 상하지 않는 상어, 고등어, 동태, 북어 등을 주로 젯상에 올린다. 그중 조선간장으로 양념한 쇠고기가 별미. 그 다음은 호박전. 파삭파삭한 튀김옷 아래 향긋하고 연한 애호박 살이 사르르 녹는다. 그리고 두부전. 소금간이 되어 있어 간장에 찍을 필요가 없다. 거친 정도로 보아 손으로 짠 두부임에 틀림없다. 구수하다. 마지막으로 상큼매콤한 안동식해를 쭉 들이키고 나니 조선시대 양반 재미가 대단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헛제삿밥은 안동의 향토 음식으로 이름이 꽤 나 있다. 몇 차례 안동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를 안내해주던 사람은 안동의 향토 음식이라며 헛제삿밥을 대접하며 안동 음식 자랑을 하였다. 그러나 안동 내에 헛제삿밥 내는 식당이 그리 많지 않다. 민속박물관 근처의 까치구멍집과 민속음식의 집, 하회마을 입구의 옥류정, 임하댐 근처의 대청마루 등 해서 너댓 곳이 전부이다.(까치구멍집과 민속음식의 집이 최근 민속박물관 아래 헬기장 근처로 이전을 했다고 한다. 민속박물관 옆 언덕에 있는 야외박물관 고가들을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 촬영 세트로 꾸미기 위한 조처였다고 한다. 상호는 그대로 쓰지만 일반 식당 건물이어서 안동 고가 대청이나 안방에서 헛제사밥을 맛보던 정취는 사라졌다. 아쉽다.)
헛제삿밥이 양반댁 높은 담장을 넘어 일반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6·25동란 직후였다. 당시 안동의 아주머니들이 함지에 나물과 밥을 이고 다니면서 ‘제삿밥’이란 이름으로 팔았다. 그러나 60년대를 거치면서 ‘제삿밥 행상’은 곧 사라졌다.
헛제삿밥을 처음 식당 음식으로 내놓은 이는 옥류정의 조계행 씨이다.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수몰 지구의 보존 가치가 있는 집들을 안동 민속박물관 옆으로 이전하였는데, 안동시에서는 이 집들을 일반인에게 임대해주어 안동 향토 음식점으로 활용토록 하였다. 그 중 한 집(민속음식의 집)을 맡은 이가 조계행 씨이고, 그는 안동에서 30년 가까이 음식점을 해오면서 다져온 손맛을 바탕으로 헛제삿밥을 향토 음식으로 내놓았다. 그때가 1981년이었고, 한 1년 후 까치구멍집도 헛제삿밥을 내기 시작하였다. 몇년 전부터 민속음식의 집은 조씨의 첫째 며느리에게 맡고, 조씨와 셋째 며느리가 옥류정으로 분점(?)을 내 나왔다. 대청마루 등 그외 헛제삿밥집은 그 역사가 한참 짧다.
향토 음식은 조금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 들불처럼 번져나가기 마련이다. 한 지역에 어떤 음식이 유명하다 소문이 나면 사람들은 그 지역에 가면 꼭 그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의무라도 있는 듯이 찾는다. 그리고 곧 대도시 식당가에도 향토 음식 이름과 그 앞에 원조, 전통 등등의 수식어가 붙은 대문짝만한 간판이 속속 나붙게 된다. 그런데, 안동 헛제삿밥은 안동에서도 그리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안동시내에 헛제삿밥을 내는 식당이 하나둘 생겼지만 크게 성공하지는 못하고 있다. 한때 서울, 대구 등지에도 헛제삿밥을 파는 음식점이 개업을 하였으나 곧 문을 닫았다.
맛이란 음식 그 자체의 맛보다는 음식의 유래라든가 음식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음식을 내는 식당이나 지역과 관련된 풍습, 풍물 등에 좌우된다. 가령 영광 바닷가의 한 식당에서 굴비를 맛있게 먹고 집에서도 그 맛을 볼 요량으로 영광 시장에서 굴비를 한 두릅 사와 먹어보지만 그때 그 맛이 아니라 실망하는 일 같은 것이다. 안동 헛제삿밥이 크게 번지지 않는 것도 그 이유이지 싶다.
헛제삿밥을 맛있게 먹고도 뭔가 한 가지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일었다. 바로 향 냄새였다. 제삿밥은 은은한 향 냄새가 배어야 제맛이다. 그런데 듣기로는 향을 피워 헛제삿밥 맛을 내는 곳은 없다고 한다. 헛제삿밥이란 간판만 보고도 식당에 들어오길 꺼리는 기독교인에 대한 배려(?) 때문이라고 한다. 음식은 때때로 이데올로기이기도 한 것이다.
*사족: 요즘 안동 찜닭이 유행이다. 10년 점쯤만 해도 안동에 없던 음식이다. 안동시청에 문의를 했더니 안동 전통 음식은 아니라고 했다. “시장에 통닭 골목이 있는데 거기서 한두 집 찜닭을 했는데 어느 틈에 전국에 번졌더군요. 어느 집이 맛있냐구요? 저희 시청 직원들은 시장 안 ‘위생통닭’이 단골입니다.” 찜닭이 북녘 음식이라는 이야기도 듣고 있다. 안동에 한국전쟁 피난민이 꽤 사는데 그들이 해먹던 음식이라는. 안동 가볼 일이 생겨 즐겁다.
헛이란 접두어는 ‘가짜’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헛제삿밥이란 제사를 지내지 않고 제삿밥처럼 해먹는 밥을 말한다. 제삿상에 오르는 각종 나물에다 적과 부침개를 제사도 지내지 않고 먹는 것이다.
안동은 ‘양반 동네’였다. 그렇다고 해서 안동 사람 전부가 다 양반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상놈들도 있었다. 권세깨나 누렸던 양반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풍산 유씨를 비롯해 안동 권씨, 장씨, 김씨 등 안동의 토착 양반 세력이 조선 시대에 한가닥씩을 했다.
양반이 양반일 수 있는 조건 중에는 제사라는 것이 있다. 문중을 귀히 여기는 그들은 4대 봉사는 예사이고 7대조, 8대조 봉사도 한다. 명절제사, 기제사, 사당제사 다 합하면 1년에 스무 번은 족히 제사를 지내야 하는 집들도 있다. 그러니 제삿밥을 참 많이도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제사도 지내지 않고 제삿밥을 지어 먹었다니. 물리지도 않는가.
헛제삿밥에는 양반답지 않은(?) 속임수가 숨어 있다. 한반도의 온 민족이 배불리 먹을 수 있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이다. 보릿고개를 목숨 붙들고 넘기기도 어려웠던 시기가 얼마 전까지 있었다. 그러나 양반들은 배고픔을 몰랐다. 하지만 감히 굶주리고 있는 상놈들이 바로 옆에 사는데 고기 굽는 냄새를 풍기면서 기름진 음식을 해먹을 수는 없었다. 양반이 지켜야 할 도리에 염치도 있는 것이다. 사랑에 앉아 이런 궁리 저런 궁리를 했을 것이다.
제사가 하도 많으니 곳간에 제수는 비축되어 있겠다, 이걸 어떻게 해먹느냐가 문젠데…. 아랫것들이 굶주리고 있을텐데 비린내 한번 슬쩍 피워도 지놈들만 배불리 먹는다고 욕할텐데…. 아, 있어도 걱정이란 말야. 보름 전에 제사 지냈지. 이놈들 우리 제삿날 알까. 나도 헷갈리는 제삿날을 어찌 알겠어. 그래! 제사 지낸다고 하자. 감히 조상님께 올리는 음식 두고 시비 붙자고는 않겠지.
이렇게 해서 헛제삿밥이 탄생한 것이다.
(이상은 안동에서 떠도는 헛제삿밥의 유래 이야기를 재구성해 본 것이다. 혹 안동 양반을 욕되게 표현한 구석이 있어도 양반님네들의 넓으신 아량으로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일부의 주장에 의하면 사대부가 밤에 사랑에 앉아 글을 읽다가 출출하여 “지난번 제사 때 남은 음식 없냐”고 찾자 말 잘 듣는 며느리가 제사 음식을 다시 장만하여 올렸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향토 음식을 취재하다 보면 장사 잘되는 집에 가는 일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연방 손님들이 들이닥치는데 주인장을 붙들고 이것저것 시시콜콜 물어보자니 자연 눈치가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취재 일정을 약속할 때 ‘언제쯤 한가합니까’ 하고 물어보게 된다.
안동 민속박물관 옆 야외박물관에 있었던 까치구멍집 주인과 약속을 할 때에도 그렇게 물었다. ‘오후 3시 30분이면 좋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러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취재를 하다 보면 약속 시간을 정확히 맞추기가 어렵다. 까치구멍집 앞에 도착한 시간이 2시 30분.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 멀리서도 그 집에서 나는 사람들 소리가 대목 오일장에서 나는 소리처럼 들렸다. 들어갈 수가 없었다. 약속 시간이 아직 1시간이나 남았고 손님이 저렇게 많은데….
까치구멍집은 안동 민속박물관 옆 둔덕 위에 있다. 1976년 11월 안동댐이 완공되면서 수몰 지구인 와룡면 가류동에 있던 집을 민속적 가치가 있다 하여 이곳으로 이전을 한 것이다. 지붕 용마루 끝에 구멍이 나 있는데 이 구멍이 까치집 같다 하여 까치구멍집이라 부른다.
1시간을 기다릴 요량으로 까치구멍집을 지나 둔덕 마루에 올라 카메라 가방을 내려놓고 앉았다. 그 자리에서는 까치구멍집의 지붕이 빤히 내려다보였다. 까치구멍집에서는 시끌시끌한 사람들 소리와 함께 구수한 음식 냄새가 흘러나왔다. 쪼르르 하고 배에서 소리가 났다. 헛제삿밥 맛을 보기 위해 아직 점심을 먹지 않고 있었다. 다른 식당이나 가게에 가서 대충 배를 채울 수도 있지만 향토 음식을 취재하러 와 어찌 그 음식을 먹기 전에 주전부리로 입맛을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까치구멍집 담 밖으로 흘러나오는 구수한 음식 냄새를 맡으며 조선시대 상놈의 서글픔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음식을 앞에 놓고 차별을 당하는 게 가장 서러운 일이라고 하던데….
드디어 1시간이 지났다. 아직 손님이 북적거렸으나 더 이상 눈치볼 겨를이 없었다. 주린 배를 안고 까치구멍집을 향해 당당히 들어갔다. 인심 좋게 생긴 아주머니가 상을 내어왔다. 콩나물, 무나물, 가지나물, 고사리나물, 취나물, 호박나물, 배추나물이 든 대접에다 밥을 턱 얹고 짭짜름한 조선간장을 척척 끼얹어 꾹꾹 비볐다. 쇠고기, 무, 두부로 끓인 탕국도 조금 넣었다. 게눈 감추는 속도가 무에 빠를 것인가.
배를 웬만큼 채우고 산적과 부침개를 하나하나 음미했다. 먼저 상어적.큼큼하고 짭짤한 게 별미다. 다음은 고등어·쇠고기·동태·북어를 꿴 산적. 하나하나 양념을 달리해 산적을 했다. 적에는 안동 지방 제사 음식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내륙 지방이라 싱싱한 해물을 구하기 어려우므로 오래 두어도 잘 상하지 않는 상어, 고등어, 동태, 북어 등을 주로 젯상에 올린다. 그중 조선간장으로 양념한 쇠고기가 별미. 그 다음은 호박전. 파삭파삭한 튀김옷 아래 향긋하고 연한 애호박 살이 사르르 녹는다. 그리고 두부전. 소금간이 되어 있어 간장에 찍을 필요가 없다. 거친 정도로 보아 손으로 짠 두부임에 틀림없다. 구수하다. 마지막으로 상큼매콤한 안동식해를 쭉 들이키고 나니 조선시대 양반 재미가 대단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헛제삿밥은 안동의 향토 음식으로 이름이 꽤 나 있다. 몇 차례 안동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를 안내해주던 사람은 안동의 향토 음식이라며 헛제삿밥을 대접하며 안동 음식 자랑을 하였다. 그러나 안동 내에 헛제삿밥 내는 식당이 그리 많지 않다. 민속박물관 근처의 까치구멍집과 민속음식의 집, 하회마을 입구의 옥류정, 임하댐 근처의 대청마루 등 해서 너댓 곳이 전부이다.(까치구멍집과 민속음식의 집이 최근 민속박물관 아래 헬기장 근처로 이전을 했다고 한다. 민속박물관 옆 언덕에 있는 야외박물관 고가들을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 촬영 세트로 꾸미기 위한 조처였다고 한다. 상호는 그대로 쓰지만 일반 식당 건물이어서 안동 고가 대청이나 안방에서 헛제사밥을 맛보던 정취는 사라졌다. 아쉽다.)
헛제삿밥이 양반댁 높은 담장을 넘어 일반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6·25동란 직후였다. 당시 안동의 아주머니들이 함지에 나물과 밥을 이고 다니면서 ‘제삿밥’이란 이름으로 팔았다. 그러나 60년대를 거치면서 ‘제삿밥 행상’은 곧 사라졌다.
헛제삿밥을 처음 식당 음식으로 내놓은 이는 옥류정의 조계행 씨이다.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수몰 지구의 보존 가치가 있는 집들을 안동 민속박물관 옆으로 이전하였는데, 안동시에서는 이 집들을 일반인에게 임대해주어 안동 향토 음식점으로 활용토록 하였다. 그 중 한 집(민속음식의 집)을 맡은 이가 조계행 씨이고, 그는 안동에서 30년 가까이 음식점을 해오면서 다져온 손맛을 바탕으로 헛제삿밥을 향토 음식으로 내놓았다. 그때가 1981년이었고, 한 1년 후 까치구멍집도 헛제삿밥을 내기 시작하였다. 몇년 전부터 민속음식의 집은 조씨의 첫째 며느리에게 맡고, 조씨와 셋째 며느리가 옥류정으로 분점(?)을 내 나왔다. 대청마루 등 그외 헛제삿밥집은 그 역사가 한참 짧다.
향토 음식은 조금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 들불처럼 번져나가기 마련이다. 한 지역에 어떤 음식이 유명하다 소문이 나면 사람들은 그 지역에 가면 꼭 그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의무라도 있는 듯이 찾는다. 그리고 곧 대도시 식당가에도 향토 음식 이름과 그 앞에 원조, 전통 등등의 수식어가 붙은 대문짝만한 간판이 속속 나붙게 된다. 그런데, 안동 헛제삿밥은 안동에서도 그리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안동시내에 헛제삿밥을 내는 식당이 하나둘 생겼지만 크게 성공하지는 못하고 있다. 한때 서울, 대구 등지에도 헛제삿밥을 파는 음식점이 개업을 하였으나 곧 문을 닫았다.
맛이란 음식 그 자체의 맛보다는 음식의 유래라든가 음식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음식을 내는 식당이나 지역과 관련된 풍습, 풍물 등에 좌우된다. 가령 영광 바닷가의 한 식당에서 굴비를 맛있게 먹고 집에서도 그 맛을 볼 요량으로 영광 시장에서 굴비를 한 두릅 사와 먹어보지만 그때 그 맛이 아니라 실망하는 일 같은 것이다. 안동 헛제삿밥이 크게 번지지 않는 것도 그 이유이지 싶다.
헛제삿밥을 맛있게 먹고도 뭔가 한 가지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일었다. 바로 향 냄새였다. 제삿밥은 은은한 향 냄새가 배어야 제맛이다. 그런데 듣기로는 향을 피워 헛제삿밥 맛을 내는 곳은 없다고 한다. 헛제삿밥이란 간판만 보고도 식당에 들어오길 꺼리는 기독교인에 대한 배려(?) 때문이라고 한다. 음식은 때때로 이데올로기이기도 한 것이다.
*사족: 요즘 안동 찜닭이 유행이다. 10년 점쯤만 해도 안동에 없던 음식이다. 안동시청에 문의를 했더니 안동 전통 음식은 아니라고 했다. “시장에 통닭 골목이 있는데 거기서 한두 집 찜닭을 했는데 어느 틈에 전국에 번졌더군요. 어느 집이 맛있냐구요? 저희 시청 직원들은 시장 안 ‘위생통닭’이 단골입니다.” 찜닭이 북녘 음식이라는 이야기도 듣고 있다. 안동에 한국전쟁 피난민이 꽤 사는데 그들이 해먹던 음식이라는. 안동 가볼 일이 생겨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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