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나
- 한소원
아는 형님네 집에 놀러갔다 연녹색 작고 여린 행운목 하나 얻어옵니다
그 가을, 나무는 분명 죽어있었습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우리는 가장 높은 웃가지 몇을 잘라 화병에 꽂았고
뿌리가 나면서 이 겨울, 내게도 가져지는 행운이 옵니다
하나가 결코 하나가 아님을 오래전 당신이 주신 애틋한 슬픔으로뿐 아니라
이렇듯 나무 한 그루의 기쁨으로도 알게됩니다
놓으면 엎질러져서 내려놓지 못하고
전철의 미세한 진동을 함께 느껴 갑니다
물받이 밑둥은 눈물처럼 흥건하고 새어나오지 않게 흰 비닐봉지를 더욱 꼭 감싸쥡니다
당신은 선인장 가시가 아니어서
까만 눈망울, 숲 사이 한 쌍의 새로 내리앉고
어느 역에서는 초등아이들을 데리고 젊은 남자선생님이 오릅니다
-쉿! 조용히, 소란피우는 거 아니야
-안돼, 거긴 앉지마 어르신들 앉으실거야
-문 앞에 있는 거 아니야, 사람들 타고내리는 데 힘들어...
방 안에만 있다가 처음 나오는 세상,
나무가 말똥말똥 듣습니다
내가 또 가만히 새깁니다
전에는 동물을 길렀었습니다
울기도 하고 짖기도 하고 고양이와 장난치다 눈을 다치기도 하였습니다
이제는 식물입니다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아니, 더 간절해 질 것입니다
집으로 들어섭니다, 우리 집입니다
세상 어디에도 이제 당신과 나를 엮는 수식어는 없지만
젖은 수건으로 잎순을 가만가만 닦는 이 순간
마음을 곁으며 함께 와
응원을 줍니다
정수기의 물을 따라 반은 마시고 반은 나무를 주며
꽃 피는 날
잎 번지는 찰나의 순간에도
나도 누군가의 소중한 선물이고 싶습니다
- 2009.12.23. 05:21~09:1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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