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눈의 통로
- 한소원
간밤에 눈 내려와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사라졌다
차량들이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속도를 잠시라도 고함처럼 질러보려고
안간힘이다
전조등에 덤불같이 내리는 눈이 영사되고
자꾸 멎는 속도와 중심에
창문을 열고 코를 펭- 푸는,
순간, 차량이 흔들리고
찰나에 실리는 힘을 보았다
구로의 공단에서 기계를 마누라보다 더 오래 대해 반기계인간이 되버린
성질 더러운 베테랑 반장이 그렇게 코를 풀었는데, 한쪽 코를 막고 기름처럼 풀었는데,
폭설같은 폭언으로 공장문을 나설 수 밖에 없던,
전국 엘리트 공고 취업생들의 뒷모습이
그렇게 희검게 뭉게지며 바큇날뒤로 튕겨지는 것이었다
흙받이만한 작은 하늘을 지금도 누가 희망으로 풀어 얘기하고 있는지
갈수록 눈발이 거세지고 세상이 하나의 허공이다
베테랑과 엘리트, 똥개와 집, 가속과 정지,
누군가는 달리고 누군가는 정지하고
누군가는 누군가를 달리게 하고
누군가는 정지케 하고,
가지런한 치아 사이, 빠져버린 하나의 충치로 깨끗하게 서 있는 시간,
세상의 첫 날처럼
나는 아무것도 몰라야지
통바지에 펄럭이는 춤의 사위로 튀어든 눈이 녹고
이 길을 건너 버선코처럼 좁은 골목을 빠져나가면 귀퉁이에서는 내가 녹으리
가로등 밑에서 눈은 그제야 자신의 그림자를 본다
봄이면 거기 민들레가 필 것이다.
- 2010. 01.04.06:48am~01.05.02:16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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