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수필,그리고

신 운수 좋은 날(펌)

수水 2011. 12. 16. 12:39

회사 택시 운전사로 매일 매일 근근히 살아가는 김첨지
얼마 전 오랫만에 외식에서 삼겹살을 급하게 먹다가 체하여
며칠째 시름시름 앓고 있는 아내와 네살배기 아들 개똥이와
반지하 단칸방에서 살아가고 있다

진눈깨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초겨울 아침
김첨지는 회사로 출근하려는데 아내가 그를 불러세우곤
"오늘 안나가면 안돼? 낵아 일케 아픈데"
이에 김첨지는 "이런 오라질뇬, 집에만 있음 쌀이 나와 떡이 나와?"
라고 매몰차게 뿌리치고 나오자니 아내가 등 뒤에서 말한다
"그럼 되도록 일찍 와요 올때 설렁탕도 사오구"

젠장, 아프다는 뇬이 처먹고 싶은것도 많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못난 남자 만나 이렇게 고생하는 아내가 안쓰럽기도 하다
아무튼 택시를 몰고 거리로 나왔는데
날씨탓인지 유난히 손님이 많다 그것도 장거리 손님이
첫 손님을 의정부까지 태워주고 3만 몇천원
다음 손님을 또 3만 몇천원에 풍납동까지 모셨다
그리고 서울 끝에서 끝까지 왔다갔다 하다 보니
그의 주머니에는 어느새 만원짜리가 스무장도 넘게 들어차 있었다
이렇게 많이 벌어들인 게 얼마만인지 기억도 안난다
이정도면 오늘 사납금을 내고도 한참 남을 듯 싶다
퇴근 후에 소주 한잔 걸치고 아내가 먹고싶다는 설렁탕도 사갈 수 있다
김첨지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차를 모는데
여행용 캐리어를 든 젊은 신사가 손을 든다
차를 세워 행선지를 물었더니
"청주공항 가나요? 김포에서 비행기가 결항됐다고 청주로 가야 된다네요"
순간 김첨지는 망설였다
여기서 청주면 10만원 이상은 부를 수 있다
그렇지만 순간 아픈 아내의 얼굴이 눈앞에 스치며 선뜻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지금 외국 바이어랑 중요한 계약이 걸려 있어서 지금 꼭 가야 합니다
요금은 얼마든지 드릴테니 제발 부탁합니다"
신사가 통사정 하자 김첨지는 단안을 내렸다
"15만원 주세요"
신사는 두말없이 택시에 탔고 차는 총알같이 청주를 향했다

불과 2시간도 안되어 택시는 청주공항에 닿았다
신사는 고맙다면서 요금에 2만원을 더 얹어 17만원을 주었다
거액을 받아든 김첨지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뭔가 켕기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다시 택시를 몰고 회사로 돌아오니 밤 8시가 지나 있었다
사납금을 내고 나오려니 동료이자 친구인 치삼이가 불러세운다
"어이 김첨지 오늘 좀 많이 벌은 모양이야? 한잔 쏘지?"
"그잖아도 잘만났다 같이 가자"
회사 부근 고깃집에 간 김첨지는 평소엔 엄두도 못내던
생등심 차돌박이 제비추리 등등을 마구 시켜댔고
술도 소주가 아닌 복분자를 시켰다
"이봐 김첨지 오늘 무리하는거 아냐? 벌써 10만원이 넘었다고"
치삼이가 만류하자 김첨지는 호기를 부렸다
"짜샤 이 엉아가 거하게 쏘겠다는데 불만있삼? 낵아 오늘 40만원도 넘게 벌었다고"
그러면서 고기와 술을 마구 처묵하며 치삼이가 걱정하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둘이 20만원 어치를 채워 먹은 후에야 자리를 털었다

만취한 와중에도 설렁탕 한그릇을 포장하여 버스 막차에 오른 김첨지
그의 반지하 집으로 들어왔을때 집에 불은 켜져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조용한 것이 불길한 기분이 와락 드는 것이었다
항상 빽빽거리던 개똥이 울음 소리도 안들리고
그러나 김첨지는 호기좋게 문을 벌컥 열면서 버럭 외쳤다
"이 오라질 뇬이 서방님 오셨는데 잠이나 자빠져..."

김첨지의 눈앞엔 언제 아팠냐는 듯 야시시한 잠옷을 입은 아내가 서 있었다
"자기야 이제 왔쪙? 개똥이는 시엄니가 보고싶다 해서 데꾸가셨쪙"
"속 안좋은거는 괜찮은거임?"
"시엄니가 손 따주시니까 낫던데? 그니까 오늘 밤 간만에 나좀 죽여주떼염 데헷♡"

김첨지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괴상하게 오늘은 운수가 좋더라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