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설

만두 이야기

수水 2004. 4. 23. 10:11
만두의 유래


만두는 삼국시대에 뛰어난 지략으로 이름을 떨친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지금의 운남성과 귀주성 일부에 걸쳐 있었던 남만(南蠻)의 추장 맹획(猛獲)을 일곱번 잡고 일곱번 풀어주는 전략으로 항복을 얻어냈을 때의 일과 관계가 있다.일곱번의 전투에서 불굴의 저항을 받은 공명은 최후의 수단으로 불을 이용하여 적을 섬멸하였으나, 많은 적이 불에 타죽은 탓으로 공명은 매우 가슴아프게 생각하였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노수(瀘水, 오늘의 金沙江)에 이르어 솟구치는 격랑이 불에 타죽은 군사들의 원한때문이라는 의견을 받들어 죽은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제사를 올리기로 하였다.

이때 사람의 머리를 대신하여 그 모양으로 밀가루를 빚고 소와 양 고기로 속을 채워 만두를 만들어 제물로 썼다고 한다. 그러니까 당시에는 만두속에 고기를 넣은 형태였던 것이지만 지금은 속이 없는 찐빵을 만두라고 부르고 있다. 둥그런 모양 때문에 여자의 유방을 뜻하는 속어로도 쓰인다.


만두(饅頭)는 중국 발음으로는 만터우인데, 중국에서 말하는 만두는 속에아무것도 든 것이 없는 찐빵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만두와 같은 것으로는 지아오쯔(餃子) 또는 빠오쯔(包子)가 있다.


교자(餃子, 지아오쯔)는 서울 명동의 유명한 칼국수 집에서 내놓는 명동교자를 통해서 조금은 알려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하교(蝦餃, 새우만두로서 광동 사투리로 하까오라 함)가 있다.

포자(飽子 또는 包子, 빠오쯔) 또한 만두의 일종이며 대표적인 것으로는 차소포(叉燒飽, 찐빵속에 단것을 넣은 것으로 역시 광동 사투리로 차슈뽀라 함)와 소룡포(小籠飽, 원래는 상해 지방의 것으로 만두속에 국물도 들어 있으며 샤오롱빠오라 함)가 있다.

교자나 포자는 외관상으로 구분이 어렵다. 다만 이름 끝에 교(餃)자가 붙은 것인지 포(飽)자가 붙었는지로 구별하는 수 밖에 없다.

그외에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유명한 것으로는 소매(燒賣, 광동사투리로 슈마이라 함) 종류가 있다. 이것도 교자의 일종이지만 겉으로 보아 속의 내용물이 드러나는 형태를 취한 점이 다르다.
대자소매(帶子燒賣, 새우와 돼지고기, 패주로 만든 것으로 광동사투리로 다이짜이슈마이라 함)와 산죽우육(山竹牛肉, 쇠고기 미트볼로서 광동사투리로 산쭉아우육이라 함)이 대표적이다.

간단히 몇개만 예로 들었지만 이같은 만두 종류만 해도 백가지가 넘을 듯하다.
이상은 만두종류이지만 그밖에 비슷한 것으로 은사권(銀絲卷)이라든가 춘권(春卷)은 우리나라에 있는 중국음식점에서도 맛볼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음식이다.

은사권은 상해요리에 속하는 것으로 겹겹의 하얀 빵 껍데기가 실가닥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며 부드러운 맛으로 일품인데 보통 고기 야채볶음과 함께 먹는다.

춘권은 춘절(春節), 즉 설날 먹던 음식이 보편화된 것으로 만두피에 돼지고기, 야채, 새우 따위를 넣고 말아서 튀겨낸 것이다. 식어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스낵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에는 조선 영조 때의 사람 이익(李瀷)의 글에 만두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 이전에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만두가 상용식이 아니고 겨울, 특히 정초에 먹는 절식이며, 경사스러운 잔치에는 특히 고기를 많이 넣은 고기만두를 만들어 먹었다. 또, 지금은 사라진 풍속이지만, 예전에는 큰 잔치에서 끝을 장식하는 특별음식으로 대만두(大饅頭)를 만들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호두알만한 작은 만두를 큰 만두 속에 가득 집어넣어 만든 것으로, 이 대만두의 껍질을 자르고 그 속에서 작은 만두를 하나씩 꺼내 먹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절식으로서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손쉽게 접할수 있는 인스턴트 음식중에 하나로 자리잡고 있으며, 인스턴트 냉동식품으로 각양각색의 다양한 냉동 만두들이 시판되고 있다.

익히는 방법에 따라 찐만두 ·군만두 ·물만두 ·만두국 등으로 나뉘고, 모양에 따라 귀만두 ·둥근만두 ·미만두 ·병시(餠匙) ·석류탕 등으로 나누어진다.

특히 미만두는 예전에 궁중에서 해먹던 음식으로 해삼의 생김새처럼 주름을 잡아 만든 데서 생긴 이름이고, 병시는 숟가락 모양을 닮은 데서, 석류탕은 석류처럼 생긴 데서 붙은 이름인데, 옛날에는 궁중에서만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한국 속담에 ‘떡 먹자는 송편이요, 소 먹자는 만두’라는 말이 있듯이 만두는 껍질이 얇고 소가 많이 들어가야 맛이 있다. 만두 소는 재료를 잘 다져서 섞고 양념하여 만드는데, 육류로 쇠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 ·꿩고기 등이 쓰이고, 채소로는 김치 ·숙주 ·당근 ·오이 ·양파, 그 밖에 두부 ·당면 등을 쓴다. 요즈음은 육류로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반반씩 섞어 쓰고, 숙주 대신 당면을 쓰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만두국 형태로 끓여 먹으며, 흰떡을 섞어서 끓이는 경우도 많다. 만두국물은 육수, 쇠고기 맑은장국, 멸치장국, 다시마장국 등 어느 것을 써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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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정초 연휴기간이면 가족들이 빙 둘러 앉아 만두를 빚던 기억이난다.

만두는 만든다 하지 않고 빚는다고 하는데 이는 만드는데 반드시 두손을 모아 정성껏 만들어야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서울 토박이였던 관계로 차례와 집안 어른들에게 인사 가는것 이외에 기억나는 큰일(?)중에 하나였던 기억이있다.

오후 무렵부터 만두속을 만들기 시작하면 두부를 짖이기는것부터 시작해서 다진고기며 신 김치와 숙주등등을 섞어서

물기가 많이 생기지 않도록 꼭 짜놓는것도 힘 좋은 집안 남정네들의 몫이였다.

집안 식구들 모두 만두를 좋아해서 참 많이도 빚었던 기억이 새롭다.

누가누가 더 많이 빨리 만두를 빚어내는지, 누구 만두가 더 이쁘게 빚는지 시합도하고 말이다,

늘 그렇지만 아버님과 남동생이 함께 만들던 남정네들의 만두는 어머니와 여동생이 빚던 만두에 비해 자꾸 커져만 갔다.

만두가 빚어지면 닭이나 사골을 고은 커다란 솥에서 빚어진 만두를 넣어 익히고, 속이다 익은 채로 둥둥 떠오른 만두를 크고 넓은 채반에 담아 내었다.

정월의 겨울 날씨는 건저낸 만두를 금방 굳어지게 하였고,

남정네들이 만든 크기만 커다란 만두는 속이 자꾸 터지기 일수였다.

꾸덕하게 굳어진 만두는 소쿠리 몇개에 나눠 담겨 보자기가 덮어진채 보관되었고 매섭게 추운 겨울 날씨는 그대로 냉장고 역활을 하였다.

출출하기만 한 정월의 긴 겨울 밤은 기름을 두른 후라이팬에서 겉이 노릇노릇 익어가는 커다란 군만두와 함께 깊어만 갔다.

요즘은 슈퍼에가면 냉동식품으로 쉽게 구할수 있어 그런지 얼굴에, 옷에 밀가루 묻혀가며 가족들이 빙둘러 앉아 만두 빚는 정겨움은 보기 힘들게 된듯하다.


그러고보니 냉동실에 사다놓은 만두를 본듯한데 오랜만에 군만두나 해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