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
비 온 뒤 고사리를 꺾으러 산에 가면
작년, 재작년, 그 오랜 세월을 두고
엄마가 내었던 길들이 훤히 보인다.
고사리 대를 똑똑 꺾는 순간과 순간 사이
엄마가 일러주시던
세상을 살아가는 가르침이
고사리처럼 들썩들썩 가슴을 치며 올라온다
고사리가 뼘씩 자란다는 건 실상은
산이, 대지가 자란다는 것
알아듣지 못할 말로
올 겨울에 돌아가신 엄마가 무어라고 자꾸
일러주시는 큰 말씀 같은 것
비 온 뒤 고사리를 꺾으러 산에 가면
나무 숲 사이 가는 빛이
기둥 기둥으로 내리고
양 어깨 희고 고운 천상의 날개를 가지신 엄마가
검은 털 숭숭 다큰 나를
"아가
아가, 우리 이쁜 아가" 하며
두 팔을 인자히 뻗어오시는, 비 온 뒤
作한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