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수필,그리고

비 온 뒤

수水 2004. 4. 30. 17:22

비 온 뒤




비 온 뒤 고사리를 꺾으러 산에 가면

작년, 재작년, 그 오랜 세월을 두고

엄마가 내었던 길들이 훤히 보인다.


고사리 대를 똑똑 꺾는 순간과 순간 사이

엄마가 일러주시던 세상을 살아가는 가르침이

고사리처럼 들썩들썩 가슴을 치며 올라온다

고사리가 뼘씩 자란다는 건 실상은

산이, 대지가 자란다는 것


알아듣지 못할 말로

올 겨울에 돌아가신 엄마가 무어라고 자꾸

일러주시는 큰 말씀 같은 것


비 온 뒤 고사리를 꺾으러 산에 가면

나무 숲 사이 가는 빛이 기둥 기둥으로 내리고

양 어깨 희고 고운 천상의 날개를 가지신 엄마가

검은 털 숭숭 다큰 나를

"아가 아가, 우리 이쁜 아가" 하며

두 팔을 인자히 뻗어오시는,  비 온 뒤

 

 

作한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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